바깥뜰을 지나 성소와 지성소로 들어가는 과정은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을 보여준다.

마치 출애굽과 광야와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과 흡사하다.

 

바깥뜰에는 놋제단과 물두멍이 있다.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의 외적인 면으로써,

놋제단은 십자가에서 성취된 그리스도의 구속,

물두멍은 그리스도의 구속에 근거한 성령의 씻음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소에는 진설병과 상과 등잔대가 있다.

진설병(임재의 떡) 상은 생명의 공급이신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을 의미하고

등잔대는 빛이신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금향로는 위치적으로는 성소에 있었지만(구약)

오늘 본문에서는 지성소에 포함하고 있다(히브리서).

이 금향로는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달콤한 향이신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체험은 더 깊고 내면적인 것이기에 지성소 안에서 가질 수 있는 가장 내적인 체험 안으로 이끈다.

 

지성소 안에는 언약궤가 있다.

그 안에는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두 돌판이 있다.

금항아리 속에 감추어진 만나는 우리의 생명 공급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을 의미하며

성소에서 진설병의 체험보다 더 깊은 것이다.

싹난 지팡이는 부활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으로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사역의 권위를 있게 하신다.

언약의 두 돌판은 십계명이 기록된 돌판으로서, 내적인 법이신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법은 하나님의 신성한 본성에 따라 우리의 영 안에서 우리를 규제한다.

이것은 성소에서 비췄던 등잔대보다 더 깊은 그리스도의 빛 비춤이 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누리고 체험하는 것은 전진해야 한다.

바깥뜰을 지나 성소를 지나 휘장 뒤, 지성소의 깊은 누림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은혜의 보좌 앞에서 그리스도를 우리의 영 안에서 체험해야 한다.

애굽을 떠나, 광야를 지나, 가나안에서 풍성함을 누리는 것과 같이.

육체를 떠나 혼을 지나, 영안에서 그 분과 한영이 되는 것과 같이.

 

히브리서에서는 반복하여 강을 넘어가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여전히 바깥뜰에서 머뭇거리고 있지 않은가?

나는 여전히 애굽에서의 기적을 기대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여전히 육체의 소욕과 혼의 생각과 염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이제 휘장을 넘어, 지성소 안 은혜의 보좌 앞에서 그리스도와의 깊은 체험에 들어가길 원한다.

가나안을 점령하고 탈취하여 하나님의 허락하는 영토를 회복하길 원한다.

육체를 넘어, 혼의 지식과 옳고 그름의 판단과 생각을 넘어, 영 안에서 생명과 평안을 체험하길 원한다.

 

오늘도 전진하게 하소서!

지성소로 향하게 하소서!

영 안에 거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