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래?(렘26:16~24)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당시에

“예수는 주님 이십니다” 라는 말로

믿음의 고백을 했지만


그러나 이 말은

“하나님이 주님이십니다.”

를 믿고 있는 유대인들에게는

신성모독의 말이었습니다.


또한 가이사는 주시다 라는 것을

로마황제가 주장했기에

“예수님이 주시다“라는 말은

로마황제의 모든 권위와 권세에

정면으로 충돌하는 말입니다.


초대교회에 있어서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입으로 시인하는 것을 넘어

목숨을 걸 수 있느냐는 것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한

두 명의 선지자 우리야와 예레미야 중

우리야는 죽고 예레미야는 살았습니다.


우리야가 한 말이 예레미야가 한 말과

다르지 않았는데 말입니다.(20)


“우리야는 마음이 심약해

여호야김왕이 자신을 미워해 죽이려고 하자

애굽으로 도망갔지만

예레미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망가지 않았다.“


“이것이 죽고자 하는 자는 살겠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다

라는 말이다“ 라고 적용 할 사람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믿음은 죽고 살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믿음은 죽기를 각오하는 것입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라는 말은

죽기를 각오하면 살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내가 죽는 것입니다.

내가 살고자 남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죽어 남을 살리는 것입니다.


내가 완전히 죽어야 내 안의

그리스도와 함께 내가 살수 있습니다.


죽기를 각오하지 않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예레미야는 살고자 예언을 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살 것을 마련해 놓고

내가 살 길을 준비해 놓고 예수를 믿는 것은

옛 선지자들이 알려준 믿음과

예수님 당시의 초대교회 제자들의 믿음과

전혀 다른 믿음입니다.


죽어야 할 목록을 적어야 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충돌하는 더러운 마음들과

교묘하고 간교한 내 생각들

모두 목록에 적혀있어야 할 것들입니다.


오 주님,

나를 주장하지 않고

매 시간 나를 부인하는 낮고 낮은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가게 하옵소서.


죽어야 할 것들이 다시는 기어 나오지 못하게

완전히 죽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10.06.07.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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