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칼 (31절)
재앙, 큰 바람 (32절)
죽임, 분토 (33절)
도살, 흩음, 그릇이 떨어짐 (34절)
도망, 도주 (35절)
황폐 (36절)
진노, 적막 (37절)
분노, 진노, 폐허 (38절)
매 절마다 반복되는 심판의 표현들을 보며
두 가지 마음이 든다.
1) 지겹다 : 비슷한 징계의 메시지가 몇 주동안 계속 반복되니, 별 감흥도 없다.
2) 두렵다 : 이렇게 반복하고 반복하여 경고하는 데에는 무슨 이유가 있지 않을까?
나는 무뎌진 내 마음을 본다.
반복되는 심판의 경고 속에서 이제는 무뎌진 내 마음을 본다.
어쩌면,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도 수많은 말세의 경고와 Sign이 나타나고 있지만,
무뎌진 우리들은 그저 남의 얘기처럼 흘려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분명, 내 어릴 때와는 많이 다른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곳곳에 지진과 심각한 가뭄과
전염병과 특이한 질병들과
여름에 눈이 오는 이상 기온현상과
종교적 분쟁과 테러와 이슬람/공산국가에서의 그리스도인에 대한 핍박과
음란과 패륜과 오락과 문화의 홍수 속에서
어쩌면 너무나 무뎌진 나의 영적 감각을 발견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깨어 있어야 할 때이다.
예수 재림의 때에 예비된 신부가, 한무리의 이기는 자가 필요하다.
신실한 자를 얻기 위해, 충성된 제자를 얻기 위해 그리 많은 시간이 허락되어 있지 않다.
BBB에게 그러한 사명이 주어져 있음이 분명하다.
분명 그 이상(vision)은 확실한데, 그 이상에 사로잡혀 있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무감각하고 무뎌진 삶을 허송하고 있다.
그 날에 분명 우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너희에게 보여준 그 계시와 Sign에 변명할 수 없을 것이다.
이상(vision)을 본 자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오 주님!
우리를 주의 회복의 이상(vision)으로 사라잡아 주소서.
깨어 있어 주님의 다시 오심을 준비하게 하소서.
충성된 제자를 얻기 위해 헌신하게 하소서.
두려운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발 앞에 우리 자신을 낮춥니다.
주여, 저희들을 얻으소서.
아멘!
하나님의 크기만큼만 전진할 수 있다라는것을 대표모임에서 나누었습니다.
나의 크기가 아닌 하나님의 크기를 생각해봅니다.
내가 결정한 커다란 때론 작은 것이,
하나님이 결정한 하나님의 크기만큼 맞지 않는다면 불순종임을 되새깁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크기는?
충성된 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