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화내지 마세요!(시106:16~31)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하겠다“(마28:20)


회사근처 성당의 한쪽 벽면의

큰 현수막에 써 붙여 놓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지

그 이유는 생략이 된 채 말입니다.


그 말을 인정한 채 생략했는지

그 말이 별로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일종의 상술인지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그 일을

(제자삼고...가르쳐 지키게 할 때, 마28:18~19)

우리가 할 때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말이

오해될 소지가 있어서 말입니다.


잘 가르쳐야지 띄엄띄엄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말씀 가지고 덤비는 마귀에게

또 기록된 말씀으로 물리친 예수님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배에 있을 때에도

강한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한다고 좋은 일만 일어나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늘 나와 함께 하는 것이 다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께 붙어있는 것이 먼저입니다.


성경은 역사 입니다.

역사는 인간의(죄) 이야기와

하나님의 이야기(구원)입니다.


구원으로 결정된 역사에서

죄의 이야기는 점점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더 잘 보여지고 있어서

마치 죄가 역사를 지배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그러나 죄가 결정적인 것이 아니라

구원이 결정적 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도자 모세와 아론을

무지한 백성들이 무시할 땐

“이런 나쁜놈들을 봤나?” 라고 말하다가

그들이 벌을 받자 “그거 고소하다”

하면서 성경을 재미있게 읽는 방법도 있지만


하나님의 취향에 하나도 들지 않는

이런 사람들을 데리고

가나안으로 들어가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마음도 읽어야 합니다.


죄인 사람이 결정적이 아니라

구원자이신 하나님이 결정적이라는 말입니다.


애굽이 어렵게 된 것은

애굽에 살고 있는 거짓신들 때문이듯이

세상이 이렇게 어렵게 된 것은

세상 속에 살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거짓 때문임은 아닌가 말입니다.


성전에 하나님이 안 계시다는 사실을

예수님이 화를 내시기 전 까지는 전혀 모른 채

예배의 행위를 하고 있었던 당시의 지도자들처럼

이것이 오늘의 내 모습은 아닌 가해서 말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고 진노를 돌이키시기는커녕

더 화를 내실지 걱정입니다.


이러다가는 바울을 빙자한 유다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처럼 오히려 마귀에게

조롱을 받는 것은 아닌지 해서 말입니다.


“아빠 화내지 마세요! 이제부터 잘 할 께요“

아이가 어렸을 때 내게 한 말이지만

오늘 내가 아버지께 해야 할 말입니다.

(2010.10.28.09:00)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