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2절)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7절)

 

나는 이 고난이, 이 시련이 왜 오는 것인지 분석하려 했다.

사탄이 주는 것인지?

하나님이 허락하신 징계인지?

내가 만들어 놓은 실수인지?

그러나 그 이유를 찾으려는 내 안에는 여전히 '판단과 정죄'의 옛 자아가 살아있음을 보았다.

그 이유를 찾아낸들 뭐가 달라지겠는가?

나의 '의'는 나의 행위에 있지 않음을 알면서도...

은혜에 보좌 앞에 나아가는 근거가 내게 있는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원인이야 어쨌든 중요한 것은 기도해야한다는 것이다.

그 때가 바로 기도해야할 때라는 것이다.

 

'판단과 분석'의 <나>가 살아있을 때에는 기도의 달콤함을 체험할 수 없었다.

고난이 깊고, 내 영혼이 내 속에 피곤할 때 ...

나는 부르짖을 수 있고 (2절)

나는 주의 성전을 바라볼 수 있고 (4절)

나는 하나님 한 분만을 생각할 수 있다 (7절)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은 영원하다."

어제 박상형순장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내 영안에서 요동을 쳤다.

 

'영원'은 하나님의 속성이고, 사람의 속성은 '유한'하다.

내게 영원한 것이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구나!

내 '믿음'은 변함이 없는가? --- 그 '믿음'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면 변함이 없어야 하는구나!

내 '사랑'이 변함이 없는가? --- 그 '사랑'이 변하고 있다면 그것은 나의 천연적인 사랑이구나!

내 '소망'이 변함이 없는가? --- 내 '소망'이 땅에 있다면 그것은 유한할 수밖에 없는 것이구나!

 

아멘~~

내 믿음은 오직 그리스도!

내 사랑도 오직 그리스도!

내 소망도 오직 그리스도!

세상을 이기신 그 분은 영원하시도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아침엔 특별히

지난 월요일에 얼굴을 보지 못한 엄재희 자매, 이연지 자매가 생각납니다.

하나님 저들이 기도하게 하소서!

그리고 그 기도를 들으소서!

우리 모두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