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면 알게 돼!(요21:15~25)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보다 더 많이
예수님께 사랑고백을 한 사람입니다.
최초로 물 위를 걸은 것하며(마14:28)
주의 영광을 목격하고 주를 위하여
초막 셋을 짓겠다고 한 것(마17:4)
예수님이 죽을 수 없다며 앞을 가로막았으며(마16:22)
다 주를 버릴지라도 자신은 아니다(막14:29)
라는 고백들이 그 증거입니다.
그러나 그가 했던 그런 고백들 뒤에는
실수나 부인 예수님의 책망 등이
항상 뒤 따라다녔습니다.
(베드로가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닌
자신이 하고 싶은 고백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원하신 것은
물러서지 않는 당당한 그런류의
사랑고백이 아니었습니다.
부활 후 세 번째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제자들의
소망을 챙기시면서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나를 사랑하느냐를
물으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마치
아직도 너의 방식대로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말로 들립니다.
그리고는 마치 답변을 주시 듯
네 양을 먹이고 치라는 말씀을
세 번씩이나 하십니다.
세 번 부인했기 때문에
세 번이나 사랑을 확인하셨다라는 말은
세 번을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세 번이나 말씀하신 이유는
여전히 예수님에 대한 사랑의 방식이
주님의 방식과 차이가 나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닌 가 생각해봅니다.
그래서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뒤
내 양을 먹이고 치라고 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나를 사랑한다면
입술의 고백으로 할 것이 아니라
내 양을 치고 먹이는 일로 하라는
것 말입니다.
예수님이 최초로 하신일이
제자를 삼으신 일이고
예수님의 최후의 명령이
제자를 삼으라고 말씀하신 것이
그 증거입니다.
요한을 비교하는 베드로에게
그를 상관하지 말라고 하신 것처럼
제자의 태도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며
따라서 제자의 평가는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임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자신의 양입니다.
그리고 그 양들을 먹이고 칠 제자를
찾고 계십니다.
따라서 제자의 관심도 예수님의
양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양의 보호가 아니라
양의 성장입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자라면 알게돼! 라는 말을
하셨나 봅니다.
(2010.03.23.08:45)
주님을 사랑한다는 진정한 고백은 양을 먹이고, 양을 치는 것이군요.
양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시키는 것이군요.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