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비판하는 것은 단순한 비판이 아닌
자신만의 잣대를 갖고 심판을 하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헤아림은 측량입니다
헤아림은 대충 세워보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자세히 세워보는 것 입니다
남의 잘못을 속속들이 그리고 침소봉대하여
더 더욱 크게 확대하여 보는 것
그리고 도마에 올려놓고 아주 아주 잘게
부수고 부수고 또 부셔서 쪼개고 또 쪼갭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티와 들보는
원문을 보면 그 의미가 더욱 선명합니다
티는 speck of sawdust로 톱밥 속의 작은 점으로 표현하고
들보는 attention은 넓은 판재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내 모습은 판재로 덮여 있으니 내 것은 보이지 않고
남의 것만 볼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 판재를 돌려 남의 잘못을 가리면
그때부터는 내 잘못을 볼 수 있겠지요
목재와 톱밥 속의 작은 얼룩
비교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내가 남에게 베푸는 선행(대접)은
비교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남을 정죄하고 관대하지 않는 것은 나의 죄 몫이고
나의 죄를 고백하지 않고는 남에게 권면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회개의 기도가 기도의 출발점 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의 감사와 가치를 알아야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나야
깊은 교제가 출발되고 성장합니다 그리고 성숙합니다
뿌리깊고 잎이 무성한 나무
폭풍우에도 넘어지지 않고
남에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그런 나무로 일산모임 지체들이 성숙하길 기도합니다
어제 순원 들의 맨투맨을 이야기 하면서
비판의 눈은 없었는지 먼저 회개합니다
나 같이 부족한 자도 순장으로 세워 주셨는데
순원 들이 못 세워 질리 없습니다
나는 개 돼지와 같았지만 순원 들은 아니기에
이제 진주(하나님의 사랑)의 가치를 깨닫고
후반기 훈련을 결심하고 그 은혜의 강물에 몸을 던지시기 바랍니다
저희가 함께 하겠습니다
후반기에 훈련을 통해 축복하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정영희자매님 강세형자매님 그리고 훈련을 결단하는 순원님
동역자로 함께 할께요♡♥
오늘 말씀을 대하면서 내 안에 작은 고백이 생겼네요..
내가 돌보지 못하면 누가 돌볼 수 있을까? 라는 작은 고백입니다.
혼란스럽게 하고 힘들게 할지라도 주님이 원하신다면 가야할 것 같습니다.
다른 곳에 적을 둘수 없는 불편한자를 기꺼이 받아주며 주님께 제대로 돌아올줄 아는
자로 성장시키는 것이 우리의 몫인것 같습니다.
잘 자란 자만 잘 자랄 자만 취한다면 앉은뱅이는 누가 맡습니까?
주님의 이름으로 잘할께요...
앉은뱅이는 혼자 일어설 수 없고 움직일 수 없어서 다른 사람들이 들어서 옮겨주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앉은뱅이로 세상의 것을 구걸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앉은뱅이와 같은 나를 주님께서 일어나 걸으라 하셨고 걷고 뛰며 힘을 넣어주셨습니다
자꾸만 다시 앉으려고 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아야 겠습니다
훈련이 새로운 일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왜냐면 삶이 곧 훈련이니까요~
그러나 훈련을 통해 부어주시는 은혜와 감격을 기대하고 사모합니다.
그것은 하늘로부터 오는 것이며 나를 더욱 온전케하시며 새롭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제 곁에 지체들 가운데서 함께 하시는 주님을 만나고 있기에 담대히 순종하기 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