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구원한 선한 용기.
2010.08.06 10:45
1)왕궁 내시 구스인 에벳멜렉.
오늘은 시드기야 왕의 환관으로 지하 감옥에 갇혀 있던 예레미야를 구해 준 구스 사람에 대한 묵상 여행입니다.
내시는 궁중의 고자가 된 남자 노예를 말합니다. 성경 시대에 통치자의 부인방의 여인들을 섬겼던 남자 종들은
종종 거세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율법은 거세하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에 내시들은 예배에 참여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궁중의 권력자 가까운 곳에 살면서 의식주의 불편은 없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노예 중에 가장 비참했을 것이고 예배에 참여를 금지당할 정도로 정결치 못한 인간 취급을 당했을 것이라
추측해봅니다.
그런 내시 에벳멜렉이 하나님을 잘 안다고 자부하는 예루살렘의 고관대작들보다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알았을까요
그리고 어려운 용기를 내어 시드기야에게 간청을 해 그의 생명을 구합니다.
이 에벳멜렉의 선한 용기로 말미암아 훗날 예루살렘의 멸망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생명 보존을 약속하십니다.
마치 여리고성 멸망 때 기생 라합을 기억하신 하나님이 연상됩니다.
특별히 곤경에 처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구한 사람들에 대한(이방인이었을지언정) 의로움을 기억하시는 분입니다.
그것은 그들의 마음 중심에 하나님을 경외함과 신뢰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시 에벳멜렉의 은밀하게 하나님을 믿고 있었던 믿음이 예레미아의 생명을 구하는 행동으로 나타났다고 봅니다.
이처럼 믿음은 언젠가 나의 삶 가운데서 실체가 되어 나타나는 능력인 줄 믿습니다.
나의 믿음도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는 상황 가운데 어렵지만 선한 행위로 실체가 되길 원합니다.
2)인간의 모든 약함과 어리석음의 집합체 시드기야.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눈을 두려워합니다.
사람들은 마음의 중심이 없을 때 판단의 근거를 잃고 이리저리 쏠립니다.
사람들은 염려와 걱정만으로 같은 고민을 반복합니다.
사람들은 당장 듣기에 고난스러운 일은 피하고자 합니다.
왜 왕이라고 해서 인간의 본능적인 연약함과 악함과 어리석음에서 제외될 수 있겠습니까
시드기야 역시 연약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있는 이러한 연약함을 극복하는 방법이 딱 하나 있음을 압니다.
이 모든 것보다 크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시드기야가 그의 인생에서 패배한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음과 상황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도
받아 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결국은 일국의 왕에서 눈앞에서 아들과 신하들의 처형과 두 눈알이 뽑혀서 비참한 포로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영적인 눈으로 사물을 보지 못했던 시드기야는 잘못된 것만을 좇던 육적인 두 눈마저 뽑히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영적인 눈이 없는 육적인 눈이 무슨 소용있겠습니까.
오늘 아침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던 시드기야와 하나님을 신뢰했던 마음과 그 행위를 보여준 내시 에벳멜렉을
묵상하면서 나의 앞에 높인 길은 두 가지 길밖에 없음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한 것을 선호하시는 분이라고 합니다.
창조 때 분명히 빛과 어두움을 나누신 것은 하나님의 성품과 기질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성경은 변증법을 싫어하며 분명한 흑백논리라고 합니다.
흑백논리는 사람을 경직되고 융통성없게 만들기도 하지만 문제의 치료에는 흑백논리밖에 없다고 합니다.
죄성 있는 우리는 중간지대를 좋아합니다.(저는 날씨도 분명한 것보다 우중충,회색을 좋아합니다.에고 주여~)
어느 한 쪽을 선택하면 책임지고 공격받기 쉽기 때문입니다.
곧 저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아침 묵상을 통해 분명한 길을 선택하고자 다짐합니다.
신뢰의 길, 하나님 빛의 길을.
자 적용합니다.
나의 선한 행위는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꾸준히 묵상하며 선한 생각을 선택할 때
행동화될 수 있습니다.
나는 악합니다. 그냥 가만히 나의 생각의 흐름을 나둘 때 참으로 가관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기에 오늘도 제가 말씀을 붙들고 또 경건서적을 묵상하는 이유입니다.
내 마음에 선한 양식을 더 많이 주어 악한 생각이 굶주려 죽기를 바라며...
방학동안 오전 시간만큼은 양보하지 않고 선한 생각의 양식을 쌓겠습니다.
그 길이 또한 하나님 은혜를 만나는 통로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자매님들.
짧지 않은 글 읽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무더위에 속에서도 감사거리를 찾아내는 시간들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주님안에서 사랑하고 늘 기억하고 기도하겠습니다.
댓글 2
-
박덕순
2010.08.06 19:17
-
박정옥
2010.08.06 19:59
저도 시드기야와 에벳멜렉을 묵상했는데 묵상의 깊이가 시냇물과 바다의 차이같네요.
배경을 자세하게 풀어서 올려 주심도 감사^^
저는 시드기야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으나 순복하지 아니하는 모습을 보았고, 에벳멜렉은 고관들의 악함을 보고
방관하지 않고 용기있게 나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런 마음을 갖게 하신것도 하나님이 예레미야와 함께 하셔서 그를
통해 구원해 주심을 또한 봅니다.
두 인물중 너는 누구를 좇겠느냐 물으심을 느끼며 핑계대지 않고 회개하며 주님만 온전히 바라보는 하루가 되도록 기도했는데...
이 저녁 아침의 다짐을 지키지 못함을 보며 남은시간 하나님과의 교제를 충분히 갖아야 겠네요.
나눔으로 부족했던 묵상을 풍성케 해 주심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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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자매님이 결코 우유부단치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옳다고 생각되면 과감히 자신의 의지를 조정할 수 있는 사람이죠,
옛적 누가 이런 말을 제게 했어요. 성연자매는 여장부라고.... 맞는 말이에요.
그러나 사람에겐 한 없이 약해서 상대를 먼저 생각해 주는 참 맘씨 고운 사람임을 우리 모두는 알죠.
자매와의 만남을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나눠 주신 귀한 묵상....다시 말씀이 살아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