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中大) 발표가 있습니다.
야~
합격이다.
복수합격
서울시립대,
중앙대
어디로 갈래?
당연히 중대(中大)지요.
큰 아들 해천이가 대학에 합격했다.
그동한 속썩인것이 한순간에 눈녹듯이 사라졌다.
친가, 외가, 친구들에게
지 엄마가 전화 붙들고 더 난리다.
그러나,
교회에서나 직장에서나
불합격하거나 아직 미정인 학부모들이 많아
우리 두 부부, 표정관리하고 다닌다.
해천이의 중고교시절이 생각난다.
분당 내정중학교 다니다가 2학년때 원주 학성중학교로 전학(아빠인 나의 직장때문에)
전학온 학생에게 가해지는 따돌림, 폭행에
툭하면 맞고 오거나 때리고 오거나~
남을 때리는 것도 싫고 맞고 오는 것은 더욱 싫었다.
학교에서 전화 올때마다 가슴 조리고~
학교성적은 뒤에서 서성이고
보다 못한 엄마가 교회에서 드럼교실 있으니 드럼이나 가르치면
애가 덜렁대는 것이 조금 나아질 것이라고 하기에
시킨 것이 해천이의 진로가 바뀌게 되리라고는 생각 못했다.
원주공고에 진학시키려고 맘 먹었는데
굳이 삼육고로 가겠단다.
좋은 관악부가 있어서 가서 음악을 하겠댄다.
한예종 교수로 있는 친구(우광혁교수)를 불러
훈시좀 해달라고 했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르다며
음악의 길이 무척 힘들다며
우교수는 자신의 경험을 섞어 이야기 해주었다.
얼마나 기를 죽였는지
해천이가 울었다.
나도 가슴이 쬐금 아팠다.
우교수가 가고
포기 할 줄 알았던 아들은
반감이 생겼는지 꼭 삼육고에 가서 관악부에 들어 가겠댄다.
고1때 정말 신나게 학교생활을 했다.
윈드오케스트라에 들어가 여름 방학때는 2주일간 미국 연주여행도
다녀오고 (~학교 덕택에)
따뚜시즌이 오면
따뚜공연장에서 신나게 북치고
겨울이면 치악예술관에서 퍼쿠션 연주에 새내기로 참여하여
폼잡고~
친구들과 관계는 좋아 (늘 인기는 짱~) 반장은 도맡아 하고
하지만
공부는 늘 뒤였다.
악의는 없는데 애가 덜렁대는 성격때문인지
잊을 만 하면 사고~
오토바이 사고나서 지도 다치고 친구는 병원입원.
병원비 물어주고(~씩씩)
대회나가겠다고 부모를 동원하여 완강하신 교감선생님께 보충수업 빼달라고 겨우 설득
했더니 대회는 안나가고~ (어휴~)
부모와는 아주 대화가 안되는 시기도 있었고(~극도의 반항)
내가 눈높이를 아주 낮추다 못해 포기했다.
월 50만원씩 서울 레슨비로 지불되는 것은
그저 저누무시끼 고등학교때 취미활동비라 생각했다.
졸업하면
폴리텍대학(직업훈련소)이나 다니게 하다가 군대보내야지...
대학에 가겠댄다.
그래서 얘기 했다.
음대 입시에 드는 돈이 피아노 반주비까지 합치니 거의 한 번에 50만원.
딱 3군데만 시험쳐라.
그리고 다 떨어지면 군대(軍隊)다!
한예종, 보기 좋게 떨어지고
겉으로는 아들아, 한 번 실패는 병가지 상사란다 했지만
내심 속상했다.(~그래도 꼴에 기대는 했는데...)
12월말에 서울시립대 친단다.
1월에 중앙대를 친댄다.
그리고 원주대도 치려고 원서를 사왔다.
불같이 화냈다.
임마, 3년 동안 서울로 레슨 보낸것이 겨우 원주대 가려고 그 지랄을 떨었냐?
관둬.
3번 기회가 다야.
너무 했나 싶었지만
좋아하는 것과 잘 하는 것은 다르다고 지난 3년간 생각해오지 않았나?
실력이 모잘라 떨어졌다면
다른 길을 찾아봐야지.
좋아하는 것은 취미로 평생 즐기며 살수 있지 않은가?
말없는 아들 보기가 힘들어서 얼른 집밖으로 나왔다.
그랬던 것이
새해 들어와 서울시립대 합격.
그것도 모잘라
1주일 뒤에는 중앙대학교에 합격.
그동안 속썩인게 한 순간에 녹아버렸다.
부모가 기쁘면 효도지.
35년전
대성중학교 1학년때
성적표를 받아 들고 집에 갔더니
울 아버지와 엄마가 대판 부부싸움을 하셨다.
성격나쁜(?) 아버지, 집안 농짱 다 부수고, 창문 부수고...
엄마는 고모집으로 줄행랑~
아버지께 성적표 보여주었더니
"음, 잘했다."
한마디 하셨지.
엄마에게 보여주었더니
"아이구, 우리 아들 ~ " 하며 짜장면을 사주셨지.
며칠 뒤 .
돈 잘 버는 울 아버지. 새 농짱 들여놓고 창문 새로 끼워놓았고
눈탱이 밤탱이 된 울 엄마 , 집에 들어와 계셨다.
대학 4학년때,
언론고시 친다고 1월 한겨레신문부터 가을 조선일보까지
계속 떨어지다가
겨울에 MBC 춘천 문화방송국 기자 시험에 , 대우그룹 공채시험에
각각 1차에 합격했다.
너무 기뻐 학교앞 공중전화 박스에서 집으로 전화했다.
아버지가 받았다.
합격했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더니.
울 아버지."음, 잘했다."
한마디 하셨지.
명퇴후
미래에셋생명에서 열심히 일한 끝에
한 번은 한 달 급여로 2800만원을 받았다.
걸어가는데 길이 푹신푹신한 침대위로 걷는 것 같았다.
아들이 대학에 합격했다.
평소 잘 하던 놈이라 원하던 곳에 되었어도 기쁠텐데
강대나 제대로 갈까
걱정했던 놈이
홈런을 쳤으니~
아들이 원하던 대학에 입학한 것이
내가 입학한 것 같고
내가 이뤄낸 기쁨보다 훨씬 더 기뻤다.
주위사람들에게 표정관리하게 해준 큰 아들.
보이지 않게 열심히 노력해준 해천이에게 고맙고
방황하는 아이에게 적성에 맞는 길을 안내해준
아내에게 더 고맙고
이 모든 것을 미리 아시고 길을 열어 주신
하나님께 더 할 나위없이 감사하다.
아침 7시반
일찍 아침먹고 도서관에 간댄다.
둘째 아들 해성이.
부모가 100번 공부하라고 잔소리 하는 것보다
웃습게 알았던 형이 대학에 그것도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한 것이 본인에게는 도전이 되었나 보다
"아빠, 전 서울대학에 갑니다."
"좋아, 아들 잘 해봐~"
좌식~ 강대라도 가겠지.
지 엄마는 여전히 철야기도하겠다고 밤에
신랑을 외로이 내버려 두고 교회에 간다.
"이젠 , 안 가도 되잖아?"
"이이는 이제부터는 해성이야~"
기쁜나머지
너무 사설이 길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어서 오십시오.
속히 보고 싶습니다.
복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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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있는 암송(60구절과 180구절),
섬기는 맘 충만한 중보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