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질이 어려운 까닭

2012.07.27 21:06

박덕순 조회 수:1138

 

[목사질이 어려운 까닭]

1. 중학교 시절 에피소드입니다. 제가 전교학생회장에 당선이 되었습니다. 학생주임 선생님이 방과 후 교무실로 내려오라고 해서 갔더니, 대뜸 하는 말이 ‘학생회장에 당선이 되었으니 감사+기념으로 전체 선생님들 저녁 식사 대접해야 한다’고, 그렇게 집에 가서 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싫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당시 저희 아버님이 장년 교인수 50명 남짓의 개척교회 목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렸지만 저는 집에 돈이 없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70명 가까이 되는 선생님들 저녁 대접 못한다고 막무가내로 버텼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 이상을 학생주임과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는지 학생주임 선생님이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제 뺨을 때리기 시작...했습니다(군사정권 시절이니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뺨보다 가슴이 더 아팠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뺨이 희생해준 대가로 가난한 집안 형편에 돈 나갈 일은 사라졌습니다.

2. 교무실에서 나와 운동장을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혼자 눈물을 흘리면서 이를 악물고 다짐을 했습니다. ‘나는 죽어도 앞으로 절대 목사는 안 한다’. 저는 그 날 제가 뺨을 맞은 것이 제가 가난한 목사의 아들이기 때문이라고 느꼈습니다. 아들이 학생회장이 되었는데 축하는 못해줄망정, 뺨이나 맞고 다니게 하는 가난한 목사 아버지를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날 이후 아버지를 점 점 더 멀리했습니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없이 행동했지만 마음으로는 아버지를 반쯤 지웠습니다.

3. 대학입학 학력고사를 치렀는데 그만 제가 가고 싶은 학교에 떨어졌습니다. 당시 KBS 9시 뉴스에도 인터뷰 하는 모습이 나왔는데 그만 덜커덩 떨어졌습니다. 할 수 없이 마음으로 재수를 준비하고 있는데 하루는 아버님이 부르셨습니다. 아버님이 눈물을 글썽이면서 진지하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빠는 네가 목사가 되기를 평생 기도했다, 신학교에 갔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제 앞에서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습니다. 그 날 밤새 잠을 못 이루었습니다. 결국 가난한 아빠의 눈물을 보고 그 아빠가 불쌍해서 후기 신학대학에 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신학을 열심히 공부해서 목사가 될 마음은 없었습니다. 철학과 역사, 사회과학 서적에 푹 빠져서 살았습니다.

3. 대학교 2학년 때 시위를 하다 붙들려서 관악경찰서에 잡혀 갔습니다. 재수가 없었는지 어떻게 심문을 받으려고 배정을 받은 곳이 4층에 있는 대공분실이었습니다. 음산한 곳이었습니다. 들어가 앉자마자 다짜고짜 수사관의 주먹부터 날아왔습니다. 말 몇 마디 물어보고 사이사이 주먹질, 발길질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식사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까무라칠 장면이 일어났습니다. 여태껏 주먹질, 발길질을 해대던 형사가 공손이 손을 모으고 식기도를 한 후에 밥을 자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장면을 보고 정말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 저 사람 기독교인이었어?, 내가 여지껏 기독교인한테 맞은 거야?’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 그 날 밤, 유치장 안에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일이 먼저인가, 사람을 바꾸는 일이 먼저인가?....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좀 우스운 이야기지만 암튼 그 날 밤 저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목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내가 좋은 목사가 되어서 불의하고 사악한 정권의 개노릇 안하고, 사람 안패는 집사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5. 사실 목사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 하나가 ‘성도를 성도답게 만드는 것’입니다.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1-12) 목사는 성도들을 세워 그들로 온전한 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소명이자 직분입니다.
제가 올해가 제가 목사 된 지 햇수로 19년째입니다. 그동안 설교, 성경공부, 신앙지도를 통해서 나름은 많은 성도들을 훈련시켰습니다. 개중에는 좀 나아진 분들도 있을 것이고, 아직도 갈 길이 먼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래도 다행히 아직까지는 저와 함께 신앙생활했던 교인들이 밖에 나가서 사람을 팼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으니, 어찌 보면 유치장에서 품었던 제 첫 번째 소명은 아직 유효한 것 같기는 합니다.

6. 그런데 목사질을 하면서 시간이 갈수록 목회가 힘들고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목사는 성도를 온전케 만드는 자인데, 그런데 목사가 제일 심혈을 기울여서 온전케 해야 할 대상으로서의 성도는 바로 ‘자기 자신’임을 배워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목사가 성도와 동떨어졌거나 구분된 별개의 신분이 아니라 성도의 일원이기 때문이고, 목사가 받은 구원도 다른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일평생 성화를 위한 싸움을 요구받는 동일한 종류의 구원이며, 다른 사람의 구원도 소중하지만 목사 자신의 구원도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어버리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7. 그래서 저는 요즘은 이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다른 사람 목회할 생각 말고, 내 자신부터 목회를 잘하자’ 그런데 그게 참 어렵습니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세상에 제일 뻔질거리고, 교활하고, 고집불통이고, 이기적이고, 무례한 성도가 바로 “요, ‘나’”라는 것 말입니다. 정말이지 저를 가장 괴롭히는 성도는 바로 자 자신일 때가 너무 많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목사인 저게 성도인 저를 맡겨주셨으니 말입니다. 다행히 아직은 인생 살 날이 좀 남아 있을 터이니, 앞으로 더욱 제 자신을 잘 목회해보려고 합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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