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이제 몇 유다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이 세워 바벨론 도를 다스리게 하신 자이어늘 왕이여 이 사람들이 왕을 높이지 아니하며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며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나이다
다니엘과 그 친구들은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않았다. 이것은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행동이다. 그들이 왜 우상에게 절하고 싶어하지 않는지는 짐작할 수 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우상에게 절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목숨이 걸려있어도 그럴 수 있을까? 그런데 다니엘은 그것을 목숨을 걸고 지킨 것이다. 왜일까?
다니엘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가치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에 대한 순전하고 순결한 믿음을 지키는 것이 다니엘에게는 목숨보다 더 귀한 지배가치인 것이다. 지배가치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옳다 그르다 할 수 없다.
만약 믿음이 좋은 어머니가 홀로 어린 자식을 몇 명 부양하고 있다면, 그 아이들이 어머니의 목숨보다 우선하는 지배가치가 될 수 있다. 그럴때 이 어머니는 신상에게 백번을 절 하더래도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 하나님께 수없이 용서를 구하면서 자식 때문에 신상에게 절하는 어머니를 정죄하지는 않으실 것이다.
다니엘과 그 친구는 홀몸들로 보인다. 자신의 것만 포기하면 된다. 나만 내 가진 것 포기하고 내 목숨만 내 놓으면 된다. 결정이 쉬울 수 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사탄의 유혹을 받았을 때도, 자신의 욕심만 포기하면 되는 것이 었다. 예수님도 홀몸이었다. 살면서 과감하게 포기하고 새 길을 가지 못하는 것에는 부양의 짐이 있는 경우가 많다. 나만 어떻게 되면 무엇이든 하겠지만, 식솔 때문에 그러지 못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딤전5:8)
그런데, 그런데 정말 그럴까? 다니엘과 예수님은 부양할 가족이 없어서 신앙에 대한 시험을 이기고 모험할 수 있었을까? 자식을 가진 어머니도 자식보다 하나님을 우선 할 수는 없었을까? 나는 식구들 부양때문에 정말 하나님께 과감히 나아가는 모험을 못하는 것일까?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아시고, 그 마음을 들여다 보시고 슬퍼하시리라. 하나님이 그 어머니의 자식들을 누구보다 잘 돌보실 것이고, 내가 모든 것을 하나님께 걸었을 때 나의 모든 짐을 하나님이 대신 져 주실 것이다. 그렇게 수없이 말씀하셨는데 내가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모든 가치보다 우선해서 내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지킬 때, 하나님이 나의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벼랑에 매달려 있을 때 하나님이 손을 놓으라고 하신다면, 받아 주시겠다는 말씀임을 알아야 하겠다. |
김진철 순장님의 가슴 깊이 울려 나는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믿음 없음을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 모든 형제자매들이 주님을 향한 믿음으로 더욱 더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삶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