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양식을 하늘의 만나를 마음이 빈 자에게 내려 주소서. 낮고 천한 우리 긍휼히 보시사 주여 주여 먹여 주소서.”
17일 서울 공릉동 드림교회 오전 11시 예배 특송 시간. 강하고 힘찬 찬양이 예배당을 가득 채웠다. 이달 초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오페라 ‘토스카’의 주역으로 활약했던 테너 조용갑(41)씨가 부른 ‘생명의 양식’이 교인의 마음에 큰 울림으로 전해졌다.
조씨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는 화려하다. 유럽 중심으로 활동하며 오페라 ‘오텔로’ ‘라보엠’ 등의 주인공을 300여 차례나 도맡았던 실력파 테너, 이탈리아 유학생에게는 꿈의 학교인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출신, ‘캄포바소 국립음악원’ 졸업, 국제 콩쿠르 20여 차례 입상…. 성악가로서 성공한 삶의 표본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조씨가 진정 바라는 수식어는 ‘하나님을 위해 노래하는 문화사역자’이다. 조씨는 이를 위해 지난해 음악인들로 구성된 봉사단체 ‘TOP(Truth of Players)’를 꾸렸다. TOP는 유럽과 한국 등지에서 공연을 펼치며 수익금 중 일부를 젊은 음악도를 돕는 데 쓰고 있다. 가난한 젊은이들을 돕기 위해 시작한 공연이지만 수익금 중 일부는 가난한 교회에 헌금하기도 한다.
조씨의 기도제목은 TOP 아카데미 건물을 짓는 것이다. 그는 기도가 이뤄질 때까지 로마에서 운영하는 자신의 민박집에서라도 젊은 제자들을 키우겠다고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이미 TOP 아카데미에 소속된 5명의 20대 초반 젊은 음악도들은 조씨의 민박집에 기거하고, 레슨을 받으며 신앙과 꿈을 함께 키워가고 있다.
“‘사람 하나 키우는 것이 교회 하나 짓는 것보다 낫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저도 어린 시절 교회로부터 도움을 받아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것처럼 가난한 음악도들이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해 돕고 싶습니다. 인재를 키울 수 있는 공간이 꼭 마련될 것이라고 믿고 있어요.”
그가 제자 양성에 뜻을 품은 것은 젊은 시절 그 또한 한 목사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꿈을 이룰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씨의 삶은 질곡의 시간들이었다. 전남 목포에서 쾌속선을 타고도 4시간을 더 들어가야 하는 가거도에서 태어난 그는 가난한 어부의 아들이었다. 15살 돈을 벌기 위해 상경했지만 누나의 간곡한 부탁으로 서울기계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학교생활을 하면서도 그는 돈을 벌어야 했다. 신문팔이, 자장면 배달, 호떡 장수, 지하철 노점상까지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했다. 고등학교 때 배운 권투로 돈을 벌기 위해 군대를 다녀온 직후인 22살 프로 선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렇게 꿈을 꿀 시간조차 없이 힘겹게 살아가는 그가 엇나가지 않도록 붙잡아 준 것은 신앙이었다. 처음 서울에 올라와 누나와 함께 다녔던 드림교회는 힘들어하던 그에게 위로와 평안을 줬다. 그는 고단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도 교회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섰다. 화요일부터 주일까지 모든 예배에 참석하며 자리를 지켰고, 힘을 써야 하는 궂은일도 도맡았다.
“어릴 적엔 친구들과 놀다가 산도 태워먹고 가난이 지겨워서 무턱대고 방황했었지요. 그러다가 서울에서 교회다니면서 새 사람이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고향에 이런 소문이 나면서 자식들을 교회로 보내는 경우도 많았다고 해요.”
신앙생활을 하면서 마음의 위안을 찾은 조씨는 교회 활동으로 삶의 전환점까지 맞게 됐다. 성가대 활동과 찬양 인도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교회 목사님이 그에게 “노래에 재능이 있으니 공부를 해 보라”고 권한 것이다.
1997년 1월 모아놓은 돈도 없고 음악을 제대로 배운 적도 없는 상태에서 목사님의 경제적인 지원을 받아 무턱대고 이탈리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어학 공부 1년을 마친 뒤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과 캄포바소 국립음악원을 거쳐 유럽 무대에 데뷔해 ‘리틀 파바로티’라는 찬사를 받으며 유럽에서 종횡무진 활동하게 됐다. 이때 잠시 신학을 배우기도 했던 조씨는 로마한인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였던 최에스더씨를 만나 백년가약을 맺고 지금은 1남1녀의 가정을 이루고 있다.
유학 이후 순탄하게 이어졌던 그의 삶에 위기가 온 것은 2년 전쯤이었다. 그는 병원으로부터 오른 발목을 절단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진단을 받았다. 발목은 뼈가 툭 튀어나와 있다. 3살 무렵 다리를 다치고 봉합수술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다리가 썩어 들어가고 있어 절단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했다.
“승승장구하던 삶에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세상의 이목에 더 신경 썼던 제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됐어요. 철저히 회개하고 치유를 구하면서 하나님을 위해 더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기적처럼 수술할 필요도 없이 치유가 이뤄졌어요.”
이 일을 겪으면서 그는 제자양성이라는 새로운 비전을 찾게 됐다. 데뷔 14년만에 ‘토스카’ 주인공으로 한국에서 첫 공연을 하게 된 것도, 오는 9월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의 주인공으로 무대에 서게 된 것도 이 일을 겪은 이후다. 그는 새 삶을 얻게 됐다고 말한다.
“정직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준비돼 있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쓰시는 것 같습니다. 이런 마음을 갖기 위해서 언제나 하나님 앞에 엎드려 있어야겠지요. 저 또한 제 비전이 이뤄질 수 있도록 매일 기도하며 살겠습니다.”
국민일보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