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440
요한복음 20장 21∼23절
오늘 본문의 배경은 부활 이후의 사건입니다. 19절에 보면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알고 있었지만 두려움에 숨어 떨고 있습니다. 주님이 떠나가셨다는 고립감에 두려워 떨던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19∼23절에 2번이나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스코틀랜드의 신학자 조지 모리슨은 이 평강에 대해 “넉넉한 자원을 소유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평강은 예수님의 임재를 통한 평강입니다. 주님을 신뢰함으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은혜의 평강입니다. 이 은혜의 평강을 선포하신 후에 주님은 엄중한 소명을 주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창세기 3장에서 인간이 범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미 목자의 심정으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타락과 부패 가운데 회복시킬 놀라운 경륜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는 확고부동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섭리 속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고 하신 것은 엄숙한 소명이자 명령입니다. 교회를 세우신 목적은 세상을 향해 보냄 받은 제자의 사명을 받은 사람들이 이 땅에 복음의 지평을 펼쳐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님이 우리 속에 역사하실 때 주신 소명을 감당하고 더 큰 일을 행할 수 있습니다(요 14:12). 신앙생활은 의존과 순종으로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원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의존은 특권이고, 순종은 의무입니다. 이것은 그냥 주어지지 않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는 소명 의식에 입각한 사람이 성령에 눈을 떠 우리의 영적 용량을 넓혀나가야 합니다. 오늘 생명에 대한 실재 능력을 체험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를 하나님의 신실한 도구로 사용하여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1세기 초대교회는 투철한 소명과 순교적 영성을 갖고 세상과 싸워 이겼습니다. 60∼70%가 노예였던 1세기의 성도들이 전한 복음 앞에 로마제국이 백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AD 4세기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를 국교화한 후 약화되기 시작했습니다. 16세기까지 교회는 세상에 동화되었습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장 칼뱅, 마르틴 루터, 존 낙스 같은 개혁가들은 참 교회상을 회복하기 위해 말씀 선포와 성례, 그리고 권징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지난 400∼500년 지나오면서 내면화돼 갈등구조가 깊어지고 고착화되기 시작했습니다.
21세기 교회는 다시 한번 1세기 초대교회의 거룩한 야성과 전투적 영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세상을 향해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롬 1:16)이라고 말했습니다.
1세기 초대교회는 겉으로 보기에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복음의 영광, 소명, 은혜의 평강 앞에 대 로마제국이 항복한 것을 기억하면서 다시 한 번 우리가 세상을 향해 보냄 받은 사명자의 사역을 감당하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정현 목사 (사랑의교회)
오늘 본문의 배경은 부활 이후의 사건입니다. 19절에 보면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알고 있었지만 두려움에 숨어 떨고 있습니다. 주님이 떠나가셨다는 고립감에 두려워 떨던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19∼23절에 2번이나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스코틀랜드의 신학자 조지 모리슨은 이 평강에 대해 “넉넉한 자원을 소유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평강은 예수님의 임재를 통한 평강입니다. 주님을 신뢰함으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은혜의 평강입니다. 이 은혜의 평강을 선포하신 후에 주님은 엄중한 소명을 주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창세기 3장에서 인간이 범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미 목자의 심정으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타락과 부패 가운데 회복시킬 놀라운 경륜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는 확고부동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섭리 속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고 하신 것은 엄숙한 소명이자 명령입니다. 교회를 세우신 목적은 세상을 향해 보냄 받은 제자의 사명을 받은 사람들이 이 땅에 복음의 지평을 펼쳐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님이 우리 속에 역사하실 때 주신 소명을 감당하고 더 큰 일을 행할 수 있습니다(요 14:12). 신앙생활은 의존과 순종으로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원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의존은 특권이고, 순종은 의무입니다. 이것은 그냥 주어지지 않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는 소명 의식에 입각한 사람이 성령에 눈을 떠 우리의 영적 용량을 넓혀나가야 합니다. 오늘 생명에 대한 실재 능력을 체험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를 하나님의 신실한 도구로 사용하여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1세기 초대교회는 투철한 소명과 순교적 영성을 갖고 세상과 싸워 이겼습니다. 60∼70%가 노예였던 1세기의 성도들이 전한 복음 앞에 로마제국이 백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AD 4세기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를 국교화한 후 약화되기 시작했습니다. 16세기까지 교회는 세상에 동화되었습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장 칼뱅, 마르틴 루터, 존 낙스 같은 개혁가들은 참 교회상을 회복하기 위해 말씀 선포와 성례, 그리고 권징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지난 400∼500년 지나오면서 내면화돼 갈등구조가 깊어지고 고착화되기 시작했습니다.
21세기 교회는 다시 한번 1세기 초대교회의 거룩한 야성과 전투적 영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세상을 향해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롬 1:16)이라고 말했습니다.
1세기 초대교회는 겉으로 보기에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복음의 영광, 소명, 은혜의 평강 앞에 대 로마제국이 항복한 것을 기억하면서 다시 한 번 우리가 세상을 향해 보냄 받은 사명자의 사역을 감당하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정현 목사 (사랑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