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440
감사 가운데 침묵에 대한 감사가 있다. 말을 잘하는 것보다 침묵하는 것이 더 어렵다. 그래서 침묵이 값진 것이다. 침묵은 가벼운 것이 아니다. 침묵은 무게가 있고, 깊이가 있다. 그래서 침묵은 가치가 있는 것이다. 쉬운 것은 가볍고, 가벼운 것치고 값진 것은 없다. 침묵이 소중한 것은, 침묵은 하나님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마더 테레사는 “침묵은 하나님의 언어이다.”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침묵을 통해 들으신다. 침묵을 통해 말씀하신다. 침묵은 말없는 언어다. 침묵은 우주적 언어다. 침묵을 통해 우리는 소통한다. 침묵 중에 나온 말은 능력이 있다. 하나님은 침묵 중에 나온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
침묵은 고독에서 나온다. 고독과 침묵은 함께 간다. 고독이 없으면 침묵도 없다. 그래서 고독은 선물이다. 고독을 통해 우리는 침묵으로 들어간다. 침묵 속에서 우리는 고요함을 경험한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의 마음은 고요하지 않다. 마음의 고요함은 침묵에서 나온다. 마음이 고요해질 때 하늘에서 임하는 영감을 얻게 된다. 호수가 고요해지면 하늘이 찍힌다. 한 순간에 하늘의 흰 구름이 호수에 찍힌다. 때로 우리는 고요한 호수에 임한 하늘처럼, 고요한 마음에 하늘의 영감이 임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요동치는 호수에는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요동치는 마음에 하늘의 영감이 임할 수가 없다.
침묵의 세계는 깊음의 세계다. 사람들은 깊음을 좋아한다. 깊은 깨달음, 깊은 맛, 깊은 멋을 추구한다. 침묵 속에 나온 언어, 침묵 속에 나온 영감이 인생의 맛을 더해 준다. 침묵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침묵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침묵은 두려운 일이다. “우리 침묵하며 하루를 지내요, 절대로 말하면 안돼요.”라고 서로 언약을 맺는 순간, 갑자기 두려움이 임한다. 또한 더욱 말하고 싶어진다.
침묵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억울한 일을 만났을 때 침묵해 본 경험이 있는가. 오해를 받았을 때 침묵해 본 경험이 있는가. 화가 났을 때 침묵해 본 경험이 있는가. 예수님은 억울한 일을 만났을 때 침묵하셨다. 오해를 받으셨을 때 침묵하셨다.
침묵은 절제에서 나온다. 침묵은 절제의 예술이다. 절제는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다. 자신의 욕망을 다스리고, 자신의 분노를 다스리고,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것이 절제다. 절제가 없이는 자유함이 없다. 진정한 자유는 자기가 마땅히 행해야 할 일을 행하고, 마땅히 행하지 않아야 할 일을 행하지 않는데 있다. 침묵을 통해 우리는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분별하게 된다. 같은 말이라도 장소와 상황과 때에 따라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 침묵의 훈련을 통해 우리는 때에 맞은 말을 하게 된다.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은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잠 15:23). 침묵하지 않는 언어는 힘이 없다. 피타고라스는 “침묵하라. 그렇지 않으면 침묵보다 더 나은 말을 하라.”고 말했다. 침묵을 통과한 언어는 울림이 있다.
침묵을 통해 우리는 내면의 불꽃을 가꿀 수 있다. 말을 많이 하면 내면의 불꽃이 시든다. 내면의 불꽃이 시들면 마음이 차가워진다. 마음이 차가워지면 마음이 딱딱해진다. 마음이 딱딱해지면 마음이 완고해지고, 완악해진다. 유연함은 사라지고, 고집스러워진다. 마음에도 온도가 필요하다. 마음은 따뜻하고 부드러워야 한다. 모든 만물은 따뜻함과 부드러움 속에 그 생명이 깃든다. 그런 까닭에 우리 마음에 온기가 필요하다. 침묵하게 되면 우리 마음의 온기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따뜻한 마음에서 따뜻한 언어가 나온다. 부드러운 마음에서 부드러운 언어가 나온다. 성령님의 불꽃은 말을 많이 하거나 더러운 말을 할 때 소멸된다.
침묵은 연습과 훈련을 통해 우리 삶의 한 부분이 된다. 말하는 것을 배우고 연습하는 것처럼, 침묵하는 것도 배우고 연습해야 한다. 침묵을 매일 연습하라. 침묵의 훈련은 말을 아주 하지 않기 위한 훈련이 아니다. 침묵의 훈련은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기 위한 훈련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 말씀으로 깨닫게 하시고, 깨우치신다. 말씀으로 치료하시고, 말씀으로 위로하신다. 말씀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신다. 말씀으로 감화시키시고, 말씀으로 희망을 주신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토록 능력이 있는 까닭은 깊은 침묵 가운데서 나오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침묵한다는 것은 기다린다는 것이다. 우리의 언어가 깊어지고, 우리의 언어가 사람들의 가슴을 어루만질 수 있기 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말하는 것을 조금 줄이고, 침묵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침묵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침묵 중에 사람들이 하는 말을 진지하게 듣도록 하자. 그리고 침묵 중에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하도록 하자. 그때 우리는 침묵이라는 하나님의 선물에 대해 더욱 감사하게 될 것이다.
강준민 목사(LA새생명비전교회 담임)
침묵은 고독에서 나온다. 고독과 침묵은 함께 간다. 고독이 없으면 침묵도 없다. 그래서 고독은 선물이다. 고독을 통해 우리는 침묵으로 들어간다. 침묵 속에서 우리는 고요함을 경험한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의 마음은 고요하지 않다. 마음의 고요함은 침묵에서 나온다. 마음이 고요해질 때 하늘에서 임하는 영감을 얻게 된다. 호수가 고요해지면 하늘이 찍힌다. 한 순간에 하늘의 흰 구름이 호수에 찍힌다. 때로 우리는 고요한 호수에 임한 하늘처럼, 고요한 마음에 하늘의 영감이 임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요동치는 호수에는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요동치는 마음에 하늘의 영감이 임할 수가 없다.
침묵의 세계는 깊음의 세계다. 사람들은 깊음을 좋아한다. 깊은 깨달음, 깊은 맛, 깊은 멋을 추구한다. 침묵 속에 나온 언어, 침묵 속에 나온 영감이 인생의 맛을 더해 준다. 침묵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침묵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침묵은 두려운 일이다. “우리 침묵하며 하루를 지내요, 절대로 말하면 안돼요.”라고 서로 언약을 맺는 순간, 갑자기 두려움이 임한다. 또한 더욱 말하고 싶어진다.
침묵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억울한 일을 만났을 때 침묵해 본 경험이 있는가. 오해를 받았을 때 침묵해 본 경험이 있는가. 화가 났을 때 침묵해 본 경험이 있는가. 예수님은 억울한 일을 만났을 때 침묵하셨다. 오해를 받으셨을 때 침묵하셨다.
침묵은 절제에서 나온다. 침묵은 절제의 예술이다. 절제는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다. 자신의 욕망을 다스리고, 자신의 분노를 다스리고,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것이 절제다. 절제가 없이는 자유함이 없다. 진정한 자유는 자기가 마땅히 행해야 할 일을 행하고, 마땅히 행하지 않아야 할 일을 행하지 않는데 있다. 침묵을 통해 우리는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분별하게 된다. 같은 말이라도 장소와 상황과 때에 따라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 침묵의 훈련을 통해 우리는 때에 맞은 말을 하게 된다.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은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잠 15:23). 침묵하지 않는 언어는 힘이 없다. 피타고라스는 “침묵하라. 그렇지 않으면 침묵보다 더 나은 말을 하라.”고 말했다. 침묵을 통과한 언어는 울림이 있다.
침묵을 통해 우리는 내면의 불꽃을 가꿀 수 있다. 말을 많이 하면 내면의 불꽃이 시든다. 내면의 불꽃이 시들면 마음이 차가워진다. 마음이 차가워지면 마음이 딱딱해진다. 마음이 딱딱해지면 마음이 완고해지고, 완악해진다. 유연함은 사라지고, 고집스러워진다. 마음에도 온도가 필요하다. 마음은 따뜻하고 부드러워야 한다. 모든 만물은 따뜻함과 부드러움 속에 그 생명이 깃든다. 그런 까닭에 우리 마음에 온기가 필요하다. 침묵하게 되면 우리 마음의 온기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따뜻한 마음에서 따뜻한 언어가 나온다. 부드러운 마음에서 부드러운 언어가 나온다. 성령님의 불꽃은 말을 많이 하거나 더러운 말을 할 때 소멸된다.
침묵은 연습과 훈련을 통해 우리 삶의 한 부분이 된다. 말하는 것을 배우고 연습하는 것처럼, 침묵하는 것도 배우고 연습해야 한다. 침묵을 매일 연습하라. 침묵의 훈련은 말을 아주 하지 않기 위한 훈련이 아니다. 침묵의 훈련은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기 위한 훈련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 말씀으로 깨닫게 하시고, 깨우치신다. 말씀으로 치료하시고, 말씀으로 위로하신다. 말씀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신다. 말씀으로 감화시키시고, 말씀으로 희망을 주신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토록 능력이 있는 까닭은 깊은 침묵 가운데서 나오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침묵한다는 것은 기다린다는 것이다. 우리의 언어가 깊어지고, 우리의 언어가 사람들의 가슴을 어루만질 수 있기 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말하는 것을 조금 줄이고, 침묵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침묵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침묵 중에 사람들이 하는 말을 진지하게 듣도록 하자. 그리고 침묵 중에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하도록 하자. 그때 우리는 침묵이라는 하나님의 선물에 대해 더욱 감사하게 될 것이다.
강준민 목사(LA새생명비전교회 담임)
침묵하라 하시는 거 같습니다.
귀한 말씀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