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교회에 예언사역이 유례없이 세워지고 있는 것과 동시에 많은 거짓 예언자들도 떠돌고 있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주님께서 좋은 씨를 뿌리실 때마다 원수가 그 밭에 가라지를 뿌리려고 할 것이라고 주님 자신이 경고하셨다.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마2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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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다면 원수가 와서 가라지를 뿌리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것을 볼 때 우리는 주님께서 가라지를 두신 뜻이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주님께서 그의 밭에 원수가 가라지를 뿌리도록 두신 목적 중의 하나는 가라지에 대처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우리가 마지막 때의 대결에 대비하는 것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알고 계신다. 그 분은 처음 유다를 택했을 때부터 그가 배반자임을 알고 계셨다. 예수님은 또한 유다가 도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돈주머니를 맡기셨다. 분명히 거기에는 돈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보다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가장 돈을 훔칠 법한 이에게 일부러 돈을 맡기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바로 가까운 주위에 마귀와 대적하도록 만드는 사람들과 상황들이 들어오도록 허락하셨다. 이를 통한 훈련이야말로 지속적인 일치나 물질을 안전히 지키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했던 것이다. 제자들을 준비시키기 위한 주님의 주 전략 중 하나는 그들의 진영밖에서 뿐 아니라 안에서 원수를 대적 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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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수 때 즉 그것이 성숙해지기까지는 곡식과 가라지를 구분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가라지는 실제로 곡식과 꼭 같이 생겼다. 하지만 곡식은 우리에게 양분을 주지만 가라지는 몸에 해롭다. 다행히도 익은 곡식은 고개를 숙이지만 가라지는 계속해서 꼿꼿이 서있다. 성숙해감에 따라 진정한 하나님의 은사는 사람을 갈수록 더 겸손하게 만든다.

 

거짓 은사는 사람을 더욱더 교만하게 한다. 추수 때가 되기 전까지는, 참되나 성숙하지 못한 선지자들은 거짓 선지자들과 마찬가지로 무익하다. 심지어 가장 위대한 선지자중의 하나인 사무엘 마저도 마음보다는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려했었다.(삼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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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난과 시련은 우리가 이 멍에로부터 벗어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로 더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주어질 때가 많다. 우리는 때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시련이 필요하다. 갈등은 우리가 방향을 잃어가고 있다는 신호가 아니라 목적지에 가까이 가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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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께서 논란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그것이 사역을 정화하기 때문이다. 첫째로 논란은 모든 진리와 사역의 회복에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오류와 극단주의를 바로 잡을 수 있게 한다. 또한 논란은 자기의 이기적인 야망을 위해 새로운 운동을 좇으려는 이들을 가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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