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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단 소리 들어도 난 신을 위해 노래한다”

[중앙일보] 입력 2011.06.14 00:29 / 수정 2011.06.14 00:42

크고 정확하고 깨끗한 음색
뉴욕선 물로 배 채우며 공부
“신념 없으면 생활이 망가져”

로마 오페라 ‘레냐노 전투’에서 테너 이용훈씨가 맡은 역은 군인 아리고였다. 세계 정상급 성악가로 떠오른 그의 활동 무대도 넓어진다. 내년 빈 국립 오페라에 데뷔하고, 베를린·뉴욕 무대에도 선다.
지난달 말 로마는 오페라 한 작품으로 뜨거웠다. 이탈리아 작곡가 베르디의 애국적 성향이 드러나는 ‘레냐노 전투’다. 1983년 이후 28년 만의 로마 무대였다. 오스트리아 지배를 받던 이탈리아의 독립 의지를 노래한 테너는 한국인 이용훈(38)씨였다.

 이씨는 세계 오페라계의 ‘최신형’ 테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밀라노 라스칼라, 런던 코벤트가든, 시카고 리릭 등 꿈의 무대 주역을 줄줄이 접수했다. 유명 성악가의 대타가 아닌 정식 캐스팅이 대부분이었다.

 이달엔 일본 도쿄·나고야에 머물고 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일본 투어다. 뉴욕에서도 ‘별들의 잔치’로 불리며 스타 중의 스타 성악가가 발탁된다. 이후에도 그는 바쁘다. 2015년까지 일정이 차 있다.

 로마 공연에서 이씨는 명성의 이유를 입증했다. 크고 정확하며 깨끗한 음성으로 ‘트럼펫 테너’의 실존을 증명했다. 성량 큰 가수가 흔히 범하는 실수도 없었다. 대포알 같은 소리에는 알맹이가 있었고, 청중 하나하나의 마음을 뒤흔들 만큼 날카로웠다. 드라마틱한 테너의 전설이 된 프랑코 코렐리(1921~ 2003)를 떠올리게 했다.
 
 공연을 앞두고 로마에서 만난 이씨는 “인터뷰는 사양한다. 한국 언론과 인터뷰 하지 않았다”며 조심스러워했다. “이 노래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씨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내 본업은 성악가가 아니다. 전도사다. 본질 대신 화려한 경력에만 초점이 맞춰질까 부담스럽다. 나는 언제든 내 본업(기독교 전도)으로 돌아갈 것이다. ”고 했다.

 - 계기가 있었나요.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노래를 그만뒀어요. 개인적으로 엄청난 시련을 겪었거든요. 생을 끝내려고도 했습니다. 98㎏이던 몸무게가 60㎏까지 빠졌어요. 기도원에 들어간 후 진로를 정했습니다. 노래로 전도하는 삶을 살기로요. 한 푼도 없었지만 뉴욕으로 유학을 떠났고, 학교에서 물을 여러 통 떠다 집에 가져와 끼니 때우며 살았어요. 이후 각종 콩쿠르에서 상을 탔고, 프랑크푸르트에서 정식 데뷔했어요. 로린 마젤 같은 지휘자와 함께 노래했고요. 하지만 7~8월엔 늘 선교 활동을 합니다. 각종 세계적 여름 음악축제에서 영광스러운 자리를 제안하지만 절대 가지 않아요.”

 - 가스펠 가수가 더 어울리는 직업 아닌가요.

 “모두가 목사가 돼서는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없죠. 건축가가 집을 지어주고, 의사가 병도 고쳐줘야 합니다. 저도 그런 임무를 맡은 사람 중 하나에요. 가장 세속적인 내용을 노래하는 오페라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영혼을 일깨워주는 역할 말입니다.”

 그의 말대로 오페라 ‘비즈니스’에서 이씨의 생각을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발성법이 참 독특하다. 누구에게 배웠느냐”는 질문에는 “하나님이 가르쳐주셨습니다”라 답한다. 오해, 나아가 비웃음을 살 만하다. 하지만 ‘평생 비웃음을 받으며 살자’는 게 신념이다.

 -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도 많을 것 같습니다.

 “네, 어떤 이는 ‘예수에 미친 사람’으로 봅니다. 저는 매일 저 자신을 죽이기 위해 노력해요. 잠시라도 방심하면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제가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저를 통해 노래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신인 가수를 보면 ‘저 사람은 나보다 경력이 못하군’ 생각할 때도 있어요. 후배들에게도 말해주고 싶어요. 여기까지 올라오기 위해 너무나 힘들게 노력하지만, 와보면 별거 없어요. 힘들고 거칠어요. 성공만을 보면서 노래하면 노래도 생활도 망가집니다. 확실한 신념을 가져야 해요.”

 세계 극장을 휩쓴 첫 한국 테너. 이씨는 어느 순간 자신의 신념을 따라 무대에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한국 공연도 2015년 이후에야 가능한 상황이다. 확실한 것은, 그 목소리를 확인해보지 못한 사람은 운이 별로 없는 청중이란 점이다.

로마=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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