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 눈을 뜨게 하시는 예수님(요9:30-41)
2010.02.12 23:09
3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예수님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오셨다.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 보지 못하는 자들은 몹시 보고자 하는 갈망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을 예수님은 보게 해주신다.
예수님에 의해서 보게 된 자들은 예수님을 찬양하고 따른다.
예수님이 보게 해 주셨다고 말하고 다닌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믿는다.
그들의 영의 눈도 밝아진다.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
- 보던 자들이 못보게 된다. 무척 갑갑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본래 우리의 시야는 모든 것을 볼 수는 없다. 보여지는 것만 보게 된다.
보다가 보지 못하게 되면, 시야 밖에 숨겨져 있던 것을 혹시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른다.
잘못보아 왔던 자들의 시야를 가려서 새롭게 눈뜨게 하시는 일도 예수님은 하시는가 보다.
예수님은 눈 뜬 소경인 바울의 눈을 가렸다가 새롭게 눈뜨게 하시는 일도 하셨다.
예수님을 믿으면 영의 눈이 띄여지게 되고, 예수님과 동행할 수록 영의 눈이 더욱 밝아지게 된다.
영의 눈이 밝아지면 지혜롭게 판단하고 점점 더 예수님이 가는 길로 가게 될 것이다.
주님!
영의 눈을 뜨게 해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그 눈을 더욱더 밝게 하셔서, 주님의 행적을 바르게 쫒을 수 있도록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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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만난 소경의 분명한 변화와 증거가 부럽습니다.
이렇게 확실한 예수님을 모르는 바리새인들에게 "이상하다. 왜 너희들은 이 놀라운 사실을 보고도 모르느냐" 라며 세상적 권위앞에 도전적 힐문을 하는 소경의 믿음이 부럽습니다. 무조건적 반응이 아니고, 다시 주님앞에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재확인하며 믿음을 굳게 하는 순수한 열정을 닮고 싶습니다.
볼 수 없어 못움직이는 소경이나 눈 뜨고 안움직이는 저나 무엇이 다를까 생각해 봅니다. 결국 믿음 없기는 대동소이 입니다.
정말 믿음의 삶이 이런것이 아닐텐데....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