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러스인생 2008년 5월호
특집2 / 권위, 하나님이 허락하셨습니다
지난해 성탄절, 행방을 모른 채 사라졌던 두 어린이가 최근 끔찍한 사건을 겪고 하나님께로 떠났다는 슬픈 소식을 들었습니다. 신문과 뉴스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안타까움을 전하고, 또 한편에서는 잔인한 짓을 저지른 범인에 대해 많은 말들이 오고 갔습니다. 왜 그랬는지 어떻게 그랬는지 많은 해석과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밝혀진 내용은, 범인인 정모(模)씨가 어려서 부모의 인혼을 겪고 계모 슬하에서 자랐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몇 차례 실연을 겪으면서 비뚤어진 여성상을 갖게 된 것이 범죄를 저지른 잠재적 원인이라고 합니다.
부모의 이혼과 재혼을 겪고 실연을 당했다고 모두 범죄자가 되는 건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의 상처와 고난에 주목하는 이유는, 너무나 쉽게 깨어지는 우리의 가정과 질서에 대해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지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롬13:1~2).
권세를 가진 윗사람도 권세를 잘못 쓰면 심판을 당하고, 권세아래 있는 사람도 복종하지 않으면 심판을 당합니다. 그런ㄴ데 심판이란 어떤 것일까요?
사탄은 끊임없이 가정을 파괴하기 위해 이혼을 도모하고 부모와 자녀를 흩어버립니다. 결손가정이 생기고, 버려지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아이들의 교회와 멀어져서 세상을 방황하게 만듭니다. 가정의 파괴가 교회의 분열로 이어지게 합니다.
깨어진 가정의 특징은 권위를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올바른 권위를 보여줄 부모도 윗사람도 없고, 순종을 가르칠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조금만 마음에 안 맞으면 서로 싸우고 갈라지게 됩니다. 골치 아픈 사람과 헤어지고, 싫은 사람 안 보고 살면 편할 것 같아도 깨어진 가정에서는 올바른 인격이 형성되기 어렵습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이 원수가 되는 걸 경험하면서 애정은 비뚤어지고 인간성이 말살됩니다.
그래서 권세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과 가정과 교회는 비참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권세를 거스르고 하나님의 명을 따르지 않은 자에게 오는 심판입니다.
고난을 통과하면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다”(마19:6)는 것이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우리는 그 명령을 목숨 걸고 지켜야 합니다.
이혼은 두 사람이 헤어진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배우자와 이혼할 때는 한 때 부모, 형제로 맺어졌던 사람들과 다 헤어지는 것입니다. 자녀가 있는 경우, 그 문제는 너무나 심각합니다. 자녀에게 할머니와 고모, 이모와 삼촌이었던 사람이 원수가 되고 남이 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 상처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이혼의 과정에서 부모가 서로를 헐뜯고 미워하고, 친가와 외가가 서로 미워하는 걸 보면서 얼마나 혼란스럽고 힘이 들겠는가 말입니다.
한 가정 안에서 이혼 문제가 있을 때 다른 가족들이 그 굴레를 뒤집어쓰고 힘들어하는 것을 수없이 봐왔습니다. 그 상처가 부모에게서 끝나지 않고 자녀에게 대물림된다는 것을, 실종 사건의 범인 정 씨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범에 순종하지 않고 가정을 깨트리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무서운 경고로 받아야 합니다.
제 말을 문자적으로만 들으시면 안 됩니다. 이혼이 그렇게 큰 죄냐고, 이미 이혼 한 사람은 어떻게 하란 말이냐고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이혼한 분들을 판단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혼과 상처로 깨어진 가정이라도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간다면 얼마든지 회복될 수 있습니다. 가족 중 단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미움대신 사랑으로, 원망대신 용서로 복종한다면 모두가 심판에서 영광으로 옮겨질 수 있습니다.
제가 그다지도 이혼을 막으려고 애쓰는 것을 저의 결혼이 행복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저 역시 살면서 이혼하고 싶은 순간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주신 남편의 권세, 시부모님의 권세에 굴복했을 때 하나님께서 칭찬의 상을 주셨습니다. 그 상이 얼마나 귀한지를 알기 때문에 이혼을 막는 것입니다.
악성(樂聖) 베토벤은 알코올중독에 매독 환자인 아버지, 폐결핵에 걸린 어머니에게서 다섯 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위의 네 형제들도 장애나 질병을 가진 상황에서 인간적으로는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을 조건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베토벤을 수 세기 동안 전 세계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음악가로 사용하셨습니다. 많은 상처 속에 자란 베토벤이 그 유명한 ‘합창’교향곡을 작곡할 때쯤에는 이미 귀가 들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일생 벗어나지 못한 가난과 조카의 배신, 물질적․정신적 고난 속에 결혼도 못하고 외로운 일생을 살았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베토벤을 그렇게까지 다루셔야 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천재적 재능을 타고난 베토벤에게 그런 고난이 없었다면 수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요? 본인이 처절하게 체험한 깊은 외로움과 고통이 있었기에 인간의 내면을 울리는 음악을 만들어냈을 뿐 아니라 찬송가의 작곡자로까지 자리매김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장 고통의 시기에 작고했던 합창 교향곡의 4악장은 오늘날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식부터 곳곳의 연주회, 축하행사에서 ‘환희의 송가’로 불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순종할 때
유괴 살인범인 정 씨가 계모에게서 자라고 많은 상처를 가졌다고 해도 그의 죄에 대해서 환경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별 인생이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가는 그날까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은 좋은 환경, 나쁜 환경이 따로 없습니다.
나에게 잘해주고 돈을 잘 벌어주면 좋은 부모, 좋은 남편입니까? 돈도 없이 밤낮 싸우는 부모, 이혼한 부모는 나쁜 부모입니까?
부유한 환경에 평생 싸우지도 않고 모든 것을 갖췄어도, 부족함이 없는 그 환경 때문에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간다면 좋은 환경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가난과 불화 속에서 힘든 인생을 살아도, 그 고난을 토해 하나님을 찾게 된다면 그 환경이 최고로 좋은 환경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도록 환경을 제공해준 부모가 최고의 부모입니다.
W.데이톤은 “형편없는 정부보다 더 나쁜 것이 있는데 그것을 무정부 상태다. 정부의 권위에 순종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곧 무정부 상태를 지지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쁜 정부보다 위험한 것은 무정부 상태입니다. 아무리 나쁜 지도자도, 아무리 나쁜 부모, 나쁜 남편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낫습니다. 아무리 나쁜 사장이고 상사라고 해도 그 직장에서 내가 녹을 먹고 있다면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부도덕한 정권과 정책에 자원해서 순종하기는 너무 어렵습니다. 아니, 나라까지 갈 것 없이 집에서 말이 안 통하는 남편, 위선적인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너무 어렵습니다. 자기 잇속만 챙기는 직장 상사에게 순종하려니 아니꼽고 억울해서 분이 납니다.
그러나 그 힘든 것을 주님이 아십니다. 그런 부모, 그런 상사에게 순종하는 것이 숨이 막혀도 그것이 나에게 필요한 훈련이기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권세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들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훌륭하신 계획안에서 그들에게 권세가 주어졌습니다. 그 권세에 순종하는 훈련을 통해 나의 거룩을 이루어 가십니다. 사람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순종하는 한 사람이 될 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구원의 상으로 우리의 가정과 교회를 축복하십니다.
김양재목사 / 우리들교회
정말 좋은 부모님을 만나셨어요.
누구도 부모님을 대신할 수 없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