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장서시는 분


앞선다는 것은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입니다.

앞선다는 것은 먼저 행하겠다는 것입니다.

앞선다는 것은 두려움을 이기겠다는 것입니다.

지난 겨울 유난히도 눈이 많았던 겨울

출근길에 눈이 소복히 쌓인, 발목까지 차는,

눈길을 10여분을 걸어 출근한 적이 있습니다.

눈길을 밟으며 3분정도 갈 때는 누가 앞장섰는지 발자국 두서너개가 있었고,

구두를 신고 있어서,

다른 곳 밟으면 옷과 양말이 젖을 것 같아 앞선 발자국을 따라 갔습니다.

몸이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내 발걸음 폭과 달라 너무 부자연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곧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는지 50센티 정도의 폭이 생긴 길에 도달하여 걷게 되었습니다.

방금 전까지 부자연스러워 불편했던 걸음이 편해졌습니다.

눈이 옷에 묻지도 않고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50센티라는 공간이 아직도 부자연스럽게 느꼈습니다.

그런데, 3분정도 또 지났을까!

이번에는 아예 인적이 없는 눈길로 접어들게 되버렸네요..

그 잠깐의 기쁨이 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잘 버티며 왔는데 눈길을 헤치고 길을 만들고 가야하기 때문이었지요.

그렇다고 돌아갈 수 있는 길도 없었구요.

하는 수 없이 눈길을 헤치며 갑니다.

어떻게 하면 눈을 묻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묻는 눈을 거부할 수 없었지요.


그리스도인의 삶도 마찬가지로 생각됩니다.

걸을 수 있는 길이 확보되면 편안하게 갈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불편하게 걸어야 할 길[앞서 갔던 그리스도인의 길]을

마다하지 않고 갈 수 있는 ‘믿음의 길’을 가야만합니다.

때론, 부자연스럽고, 때론, 넘어지기도 하지만,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길로 지속적으로 간다면

그 길은 넓어질 것이고 익숙해질 것이고 평탄해질 것입니다.

또한, 주님은 우리의 앞서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걸어가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주님이 앞장서고 계십니다.

나는 다만 따라가고 있는 것이지요.

주님께서 그 길을 먼저 경험하시고, 평탄케 하시고 계십니다.

나를 내세우는 일은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주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제는 너희 앞서 행하는 나(주님)을 따르기만 했으면 하며 말씀하십니다.

나는 주님이 앞장서고 계심을 확신합니다.

모든 질타를 먼저 받으시고 계시며, 오물투척, 거부, 불편함

이 모든 일들을 먼저 받고 계십니다.

내가 질타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항상 주님이 먼저 받으셨습니다.


어제는 황정욱 형제 부친 빈소에 찾아갔습니다.

황정욱 형제를 위로해주기 위해 가기도 했지만,

어제는 이도연자매와 일대일이 약속되어있기에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서 지체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앞서 누군가를 만나게 해주시겠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부의 문자’를 여러 사람에게 보내며 지난날 함께 했던 지체들에게도 보냈습니다.


뜻밖에도 김oo 자매님의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준비해주신 일이라고 확신했으며,,

일정을 수정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빈소에서 자매님과 또 모임 지체들과 만나며

김oo 자매님께 모임참석을 권면했습니다.

자매님의 마음에도 그 마음이 있었고,

스스로는 참석하기가 어려웠음을 고백하였습니다.

다음주 월요모임에 함께 참석하기로 하였으며,

지체들과 교제나누기를 갈급해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과의 교제, 지체들과의 교제가 지연 됐을 때

우리의 믿음 또한 약해짐을 느낍니다.

함께 교제 나눔의 기쁨을 모두 누리기를 기대합니다.

 

제가 앞장설까요?  떽!

앞장서시는 주님은 항상 이렇게 내 자신을 드러낼 때보다 분명한 결과를 보여주십니다.

세상이 나의 욕구를 위한 방향을 설정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앞장서시는 주님의 방향을 따라 갈 때

선한 그리스도인들로 만드시며,

그분의 뜻을 우리를 통해 만들어 가실 것을 확신합니다.

앞장서시는 주님 오늘 또 무슨 만남을 주실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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