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낫기를 원하는가?(요5:1-9)
2010.01.20 06:37
병이 38년이나 되었다. 나이가 38세 이상이다. 그가 하는 일은 연못가에 누워있는 일이다. 언젠가 천사가 와서 물을 동하게 할 때, 못에 먼저들어가면 병이 낫는다고 한다. 막연하게 기다린다. 그럴 일은 발생하지 않고, 또 이제는 사실 기대도 없다. 천사가 언제 올지도 모르고, 온다고 해도 그를 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다. 그는 병을 고치고 싶어 연못가에 있으나, 연못가에 누워 생활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그저 그렇게 살고 있을 뿐이다. 어떻게 먹고 살고 있는지 38년동안 살아왔으니 나름대로 살 방도는 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이 물으신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정말 네가 병이 낫기를 소망하냐고 확인하신다. 병이 나아 멀쩡하게 되면 더이상 연못가에 누워 있을 수가 없다. 공짜로 얻어 먹을 수도 없을지 모른다. 38년동안 어쨌든 아프다는 타당한 이유로 일하지 않아도 되었고, 누군가를 부양할 책임도 없었고, 짊어질 짐도 없었다. 낫게 되면 직접 일해서 먹고 살아야 되고, 다른 사람들 처럼 해야할 의무도 생길지 모른다. 예수님의 질문이 흡사 이제 그만 앉아서 놀고 먹던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 일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겠느냐? 하시는 것 같다. 병자는 예수님의 질문에 내가 정말 낫기를 원합니다 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나를 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다. 내가 가는 동안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간다. 그래서 나는 고침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라는 자신이 나을 수 없는 이유를 말한다. 예수님께 고쳐 달라는 말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를 고쳐 주셨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고 명령하셨다. 놀고 안주하고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너에게 38년동안이나 핑계거리가 되었던 그 자리를 들고 세상속으로 들어가라 하신다. 세상 속으로 들어가 일하라고 하신다. 예수님의 말씀이 병을 고쳐주는 자애로운 말씀이 아니라, 사명을 잃고 살았던 자에게 사명을 일깨워 주시는 준엄한 명령으로 느껴진다. 병자는 예수님의 명령에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간다. 병을 고쳐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말씀도 못드린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어 자리를 거두고 짐을 정리해서 38년 동안 정들고 익숙했던 그 자리를 떠나는 것이다. 그날은 더군다나 아무 것도 하지 말아야 할 안식일이었다. 나를 더 나아가지 못하게 발목을 잡고 있는 그럴듯한 핑계거리는 무엇인가? 그러면서도 기도제목에는 살짝 빼놓은 그것은 무엇인가? 주님은 말씀하신다. "네가 정말 낫고자 하느냐?" 주님은 정말 낫게 해 주실 분이다. 내가 정말 낫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는가가 문제다. |
주님! 저의 고질적으로 반복되는 죄된 습관을 떨쳐내길 원합니다. 알면서도 계속하고 있는 그것들, 이겨내고 절제하도록 도와주소서! 그 자리를 떨쳐내고 떠날 수 있게 하여 주소서! |
1. 저녁 7시 이후 식사 금지 2. 시간, 능력을 핑계로 하지 않고 있는 일들 착수하기 - 문서관리, 채권관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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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멋진 묵상 글 감사합니다.
저는 오늘 무질서에 대해서 묵상했었는데 형제님의 묵상이 훨씬 더 마음에 다가옵니다.
제가 묵상한 내용을 조금 정리해봅니다.
베데스다 연못 가의 행각의 상황을 상상해보았습니다.
연못의 물이 실제 동했는지 여부는 잘모르겠지만 그래도 동했으니 사람들이 그렇게 모여 있었고,
38년된 병자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까요.
소경, 절뚝발이, 중풍병자 등 많은 병자들이 혹 언제일까 하며 물이 동할 때를 기다리다 물이 동합니다.
서로 먼저 들어가겠다고 난리.. 난리를 칩니다.
몸도 불편한 사람들이 혹 자기보다 앞선 사람이 있으면 그것을 그냥 못 봅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그사람을 제치려고 합니다. 그런 아비규환과 같은 싸움 중에 어떤 사람이 먼저 들어가게 되지요.
아이티의 아픈 소식을 접하며 그 나라의 비극이 자연재해뿐이 아님을 봅니다.
사람들을 통솔할 지도자의 부재가 재난을 당한 사람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 하나 구호를 하려고 해도 서로 가지겠다고 난리를 치는 상황에서 힘없는 사람들은 그곳에서도 빵한조각 얻기 힘듭니다.
몇 년 전에 서울역에서 자주보던 장면이 생각납니다.
일본에서 수학여행 온 여학생들이 화장실에서 일렬로 줄서있는데 우리나라 아주머니들이 그들을 흩어보면서
얘들이 왜 이렇게 줄을 서있나 하며 화장실로 직접 들어가는 장면이지요.
아마 그 후에 우리나라에서도 한줄서기 운동이 일어난 것 같은데 잘 지켜지나 모르겠습니다.
너무도 고통스럽고 절박한 현실이지만 그곳에서 어떤 분이 질서를 세우고 순서대로 들어갈 수 있도록 조정을 해 준다면
그리고 기다리는 동안 서로를 배려해주며 함께 지낸다면 베데스다 연못의 풍경은 훨씬 나았겠지요.
사회적으로 질서를 세우는 일,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일의 중요성을 새삼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선교가 시작되는 곳에 사회사업이 함께 시작되나 봅니다.
마치 베데스다 연못가를 찾으신 예수님처럼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끝까지 본분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례요한이 끝까지 본분을 지켰듯이...
오늘 하루, 주위 사람들을 배려하며, 질서를 지키는 향기나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