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웅 목사의 시편] 감사의 계절
언젠가 새 가족 심방을 하는데 그 가정에서 내놓은 기도제목이 아빠의 건강문제였다. 가정마다 가장 많은 기도제목 중에 하나는 건강문제인지라 대수롭지 않게 들었는데, 보태는 설명이 심상치가 않다. 남편이 심각한 부정맥이 있어서 심장박동이 갑자기 불규칙해지는데 심하면 사망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서 과거 느닷없이 쓰러진 위험한 순간들이 있었고, 또다시 언제 갑자기 심각한 일이 벌어질지 몰라서 지금은 인공장치를 가슴에 삽입해놓았다고 한다. 기도를 마치고 그 집을 나오는데 내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께 죄송한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한 번도 정상적으로 뛰고 있는 내 심장으로 인해 감사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동으로 뛰고 있는 심장박동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그것이 무한한 감사의 제목이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나는 내 심장에 오른손을 얹으면서 부끄러운 마음으로 감사의 마음을 올려드렸다.
한국 최초의 우주비행사 이소연 박사의 글을 본 적이 있는데, 가슴에 깊이 와 닿는 부분이 있었다. “우주에서 숨을 한 번 들이키려면 장비며 인력이며 돈이며, 엄청나게 큰 대가를 지불해야만 해요. 하지만 지구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지요. 어떤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마음껏 숨을 쉬며 살 수 있게 해 주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도 감사함을 모르고 살았던 거죠. 저는 그 감사함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이 나의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무심코 들이키는 공기가 얼마나 비싼 것인가. 진심어린 감사가 없는 인생이 얼마나 천박하고 뻔뻔스러운 인생인가’라는 생각이 밀려왔다.
몇 년 전 한 친구 선교사의 임종을 옆에서 지킨 적이 있다. ‘어린 두 딸을 남겨 놓고 먼저 떠나는 엄마의 심정이 얼마나 무거울까. 말기 암으로 찾아오는 육신의 고통은 얼마나 심할까.’ 나는 그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의 임종을 지키고 있었는데 그의 입에서는 믿을 수 없는 고백이 흘러나왔다. 한마디도 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순간, 숨을 헐떡이며 온 힘을 다해 외치는 그의 마지막 말은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였다. 그의 위대한 고백 앞에서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사도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했는데, 나의 친구에게서 나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물씬 풍겨 나오는 것을 느꼈다.
손양원 목사님의 유명한 감사가 생각난다. 두 아들이 순교의 제물이 된 후, 목사님은 10년 치 월급에 해당하는 거금을 감사헌금으로 바치면서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이 나오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너무도 진한 그리스도의 향기가 아닌가.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와 함께 우리에게서 감사의 향기도 함께 진하게 풍겨났으면 좋겠다.
<서울 내수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