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달러 장학생 최성찬씨, 공부의 신? 천만에요 비결은…


미국 보스턴대 졸업하고 외교부 인턴으로 일하는 최성찬씨 꿈과 비전

최성찬(23)씨는 올해 미국 보스턴대를 졸업하고 지금은 한국 외교통상부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외국 명문대 졸업 후 한국의 외교관이 되기 위한 과정이겠구나’라고 평범하게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올 연말 인턴이 끝나는 대로 그는 보스턴대 석·박사 과정을 시작한다. 그 후엔 미국 정부의 공식 외교관이 된다. 그는 이미 확정된 미국 외교관의 과정을 하나하나 밟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보스턴대 2학년 때 미국 정부의 외교관 선발과정인 ‘특별 프로그램 펠로십’ 장학금 수혜자가 됐다. 미국 전체 대학생 800만명 중에서 32명이 뽑혔고, 그 중에서도 최씨는 유일한 한국인이다. 장학금 액수는 박사학위 취득까지 10년간 10만 달러다.

그뿐만이 아니다. 대학 재학 중엔 4학년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대학 재학 중에 받은 장학금 종류만 10개가 넘는다. 장학금 대신 포드 승용차를 받은 적도 있다. 받은 장학금을 모두 돈으로 환산하면 100만 달러는 족히 될 거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는 ‘공부의 신’일까. 그는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펜싱 대표선수로 활약했다. 트럼펫과 기타 연주, 노래와 댄스 실력도 프로급이다. 고등학교 때는 잡지 모델로 활동한 적도 있다. 오죽했으면 국내 대표적인 연예기획사에서 “가수 비처럼 만들어주겠다”며 1년간이나 섭외를 했을까. 그의 좌우명은 ‘Study Hard, Play Hard(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놀기)’다.

최씨는 자신의 공부 비결을 이렇게 설명했다. “10대, 20대 때는 뭘 하든지 열심히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방향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돈 많이 벌고, 좋은 직업 갖는 게 방향이 되죠. 저에겐 하나님께서 방향이 되어 주셨어요. 뭘 하든지 하나님을 위해서 하자는 겁니다.”

최씨에겐 누나와 여동생이 있다. 그런데 이들에겐 대학 4년 전액 장학금 수혜자란 공통점이 있다. 누나 은혜씨는 보스턴대를, 동생 은희씨는 하버드대를 4년 전액 장학금으로 다니고 있다.

어머니 황경애씨가 간증집 ‘엄마, 울지마’(수엔터테인먼트)에서 밝힌 자녀교육 비결은 이렇다. 우선 ‘공부하라’는 말은 거의 한 적이 없다. 대신 아이들을 도서관이나 박물관, 미술관, 극장에 데리고 다녔다. 아이스크림을 사주면서 책이나 역사에 대해 흥미를 유발시키기 위해서다.

‘공부하라’는 말 대신 그녀가 아이들에게 자주 했던 말은 ‘기도하자’ ‘예배드리자’다. 황씨는 “아이들이 두세 살부터 무슨 일이 생기면 먼저 기도하는 법부터 훈련시켰다”며 “심지어 손가락을 다쳐도 기도하는 것부터 가르치다보니 지금도 아이들이 기도해 달라고 조른다”고 말했다. 그녀는 믿고 있다. 자녀가 명문대에 들어간 것이 성공의 척도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건 하나님의 자녀임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게 성공의 척도임을.

자녀를 최대한 바쁘게 하는 것도 자녀교육 비결의 하나다. 황씨는 주일예배는 물론, 금요일 성경공부, 토요일 중고등부 활동에 자녀들을 참여하게 했다. 10대 자녀들을 범죄와 유혹에 노출시키는 대신 하나님께 관심을 돌리기 위한 조치였다. 방학 때면 어김없이 봉사나 선교에 내보냈다. 최씨의 누나는 이미 10대 때 세계 일주를 하다시피 했고, 최씨도 이미 중국, 멕시코, 일본 등을 단기선교로 다녀왔다.

그렇다고 최씨가 아무 어려움 없이 자란 엘리트 청년은 아니다. 최씨는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의 가출이라는 충격을 겪었다. 목사였던 아버지의 가출은 교회에 큰 분란을 준 것은 물론 가정에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하나님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졌다. 3년 넘도록 방황하던 그를 붙들어준 건 교회 형들이었다. 그들은 최씨에게 밥도 사주고, 놀아주고, 인생 상담도 해주었다. 그는 ‘저 형들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구나’라고 느꼈다. 그가 3년간의 방황을 마치고 고1 여름수련회 때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었던 것도 그 형들의 헌신된 삶 때문이었다.

그는 성경 인물 중 욥을 가장 존경한다. 최씨는 “욥은 엄청난 고난과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철저히 혼자였다. 하지만 그의 옆엔 하나님이 계셨다”며 “그 욥을 알면 알수록 나의 고통쯤은 아무것도 아니란 걸 깨닫는다”고 말했다.

최씨의 꿈은 미국 외교관으로 중동에 파견되는 것이다. 대학 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본 게 계기가 됐다. 방학 때 틈틈이 익힌 히브리어와 아랍어는 현지인과 대화도 가능할 정도다.

외교통상부 인턴으로 있는 동안 그가 가장 많이 들은 단어는 ‘남북한’ ‘통일’이다. 미국 교포 3세인 그에겐 낯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씨는 “한국인으로서 분단과 통일에 대해서 더 연구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며 “중동 못지않게 한반도에도 평화가 필요하다는 걸 절감했다”고 말했다.

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