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롬 14:9,10 ”
단기선교를 준비하며 뽑게 된 말씀.. 준비 하는 내내 계속 머리 속에서 맴돌고, 묵상케 되었습니다.
시작은 “이 말씀을 왜 나에게 주셨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묵상하면서 떠오른 것은 작년 12월부터 계속적으로 기도했던 기도제목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쉽게 판단하는 나의 연약함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하며, 사랑의 사람, 용납의 사람이 되길 원한다는 기도제목...
다시 한번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바로‘비교와 판단’이 아닌 ‘이해와 용납과 사랑’임을 생각하며 단기선교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순전한 열정을 요구하시다.)
단기 선교를 준비하는 준비 모임 가운데, 하나님 앞에서 ‘엉엉’울 수 밖에 없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사역하고 계신 사모님의 강의를 듣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나도 잘 알지 못하고 있던 내안에 하나님께 대한 순전치 못함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이 순전치 못함은 하나님께 대한 섭섭함과, 서운함으로 드러났고 또 이 섭섭함과, 서운함의 뿌리가 하나님의 어떠하심이 아닌 나의 어떠함 때문임을 보게 되면서 순전하지 못한 내 모습으로 인해 울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2002년부터 지금까지 나름 숨 가쁘게 달려왔던 시간들..... 하나님께 뭔가를 바라고 시작한 일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랑과 은혜로 인한 자원함에 의한 삶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소원하고 기도했던 일들이 풀리지 않는 것으로 인해 나도 모르게 “ 내가 뭔가를 바라고 한건 아니지만.. 그래도 하나님 너무 하신것 아니에요? 내가 이렇게 까지 헌신하며 살았는데... ” 라는 섭섭한 마음들이 올라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대단하게 살았던 것도 아니면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또다른 것을 준비하는 저에게 순전한 열정의 삶을 요구하고 계셨습니다.
나의 어떠함을 내세우는 것이 아닌,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와 사랑에 의한 자원함을 말입니다.
(소망을 봅니다. )
제가 위구르 민족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작년 7.5 사태 ’입니다. 중국에 대해 관심도 많았고 짧게 살았지만 솔직히 ‘신장위구르자치구’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중국의 서북지역이라해야 ‘서안’이 끝인 줄 알았으니까요. 작년 우르무치에서 발생한 사건을 통해 한족과 소수민족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찾다보니 위구르민족의 아픈 역사와 현실의 삶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 가서 직접 그 땅을 보고싶다는 생각들을 했습니다. 그렇게 단기를 결정하고 팀을 이룬 뒤, 과제로 시작한 ‘신강위구르자치구’에 대한 영적도해를 통해 뿌리깊이 박혀있는 두 민족 간의 분노와 상처 그리고 이것을 부추기는 사단의 속임을 보게 되었고, 그 땅이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으로써 만 치유될 수 있고, 하나 될 수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그 땅에서 살아가는 위구르족, 한족을 바라보며,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의 삶을 살아가지만, 서로에 대해 깊은 상처와 원한이 서려있는 그들의 모습은 깊은 상처로 인해 고통스럽고 아프지만, 소리조차 지를 수 없는 현실로 인해, 겉으로는 전혀 아프지 않아 보이나 이미 썩을 때로 썩어 더 이상 고통이 고통인지, 아픔이 아픔인지 모른 채 살아가는 이들의 삶 속에 예수님이 함께 아파하고 계셨습니다.
현실적으로 이 땅은 99%로의 이슬람임을 증명하듯 , 도시 곳곳에서 아집스럽게 서 있는 모스크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민족 설움의 해소 와 중국으로 부터의 독립이라는 목표를 위해 민족의 응집을 위한 구심점이 필요하기에 더욱더 이슬람이 강조되어진다고 합니다. 이런 철옹성 같은 상황들을 보며, 복음이 필요하고, 복음을 전하긴 하지만, 변화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산공원에서 이미 앞서서 이 땅을 밟으신,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사셨던 그 분들의 무덤 앞에서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살도록 만드셨는가... 라는 자문 속에 ‘ 복음’이란 두 글자가 떠올랐습니다. 복음이 무엇인가? 복음이란.. 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신뢰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진심을 믿고 그 십자가 사랑에 반응 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나에 대한 확신. 정말 그렇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나의 사랑과 신뢰가 먼저인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신뢰가 먼저이셨기에, 하나님되시는 당신께서 친히 인간의 몸으로 오셨고, 십자가의 대속을 이루신 것입니다. 이 민족을 향해 그리고, 이땅을 향해 동일하게 그렇게 믿고 계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신뢰를 깨닫게 되자. 소망이 보였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진심을 알아 반응 한 것처럼, 이 사람들도 그러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신뢰가 꼭 그렇게 이 땅을 변화시키실 것이라는 확신 말입니다.
(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8박9일의 일정 가운데.. 가장 많은 눈물을 흘리게 한 곳.. 한국의 양화진 같은 곳인 동산공원입니다.
사람들은 그냥 공동묘지라고 생각해서 아무런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었는데, 알고보니 묘지 저 깊숙한 곳,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았던 그 곳에 그 땅을 위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사셨던 선배님들의 무덤들이 발견되었다고합니다. 10여년전 발견되었으나, 그 흔한 잔디 하나 없이, 황폐함 가운데 세워져 있는 무덤은 쉽지 않았을 그분들의 인생을 대변하는 듯 했습니다. 살아생전이나, 죽어서나 아무런 영광도 없이, 오직 하나님의 위로와 칭찬과 격려로 만족하셔야 했던 그분들의 삶.. 그와 대조적으로 동산공원에서 좌측으로 내려다보이는 것은 화려함과 부의 상징인 하늘을 찌를 듯한 거대한 빌딩으로 가득 차 있는 우루무치 시내였습니다.
한 도시 안에 어찌 이렇게 대조적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가이샤라 빌립보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질문했던 성경말씀이 떠올랐습니다.
“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
황제의 논리, 세상의 논리가 가득한 이 세상에서 너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어떻게 살길 원하니? 라고 나에게 물으셨습니다. 사실, 그 당시 한조의 팀장으로써, 조별 사역을 마치고 돌아온 후, 제 마음에는 복음을 영접한 일은 물론, 실제적인 복음제시도 못하는 사역을 하고 왔다는 사실로 인해 마음이 어려웠습니다. 복음 전도자로써의 삶을 살고 싶다고 다짐한 자가, 복음제시조차도 하지 못했다는 현실이, 열정과 현실이라는 괴리감 때문에 생각이 많았던 상태였습니다. 그런 저에게 예수님께서는 “승화야.. 네가 살길 원하는 삶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네 마음 이 힘들어질 수 있어, 지금 내가 힘들어 하는 것처럼 말야... 현실의 문제들로 인해 고민하고 아파해야할 일들이 많음에도 그것들을 감수 하고 정말 그렇게 살 수 있겠니? ”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의 질문 앞에, 아니 사역자체 보다 내가 감당해야할 것들에 대해 먼저 생각해주시는 예수님의 그 사랑 앞에 ‘주님! 사역의 결과를 물으시는 것이 아니라 제가 감당해야할 제 마음의 싸움에 관한 것들에 대한 물음이시라면, 제가 그렇게 살겠습니다.’라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삶이 라는 것이 그리 녹록치 않음을 알기에 쉽게 대답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짧은 며칠의 사역도 잘 하지 못하는 나이지만, 이런 나를 여전히 사랑하고 계시고, 신뢰함으로 응원하고 계시는 하나님 때문에 살아갈 수 있음을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은 바로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신뢰인 것입니다.
이번 단기 선교를 통해 얻은 것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신뢰에 대한 확신과, 또한 나를 사랑하고 신뢰하듯, 다른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신뢰가 동일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5년의 시간동안 한 직장에서, 직장사역자로 살며, 직장을 위해 기도했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회사의 분위기나 상황들, 또 복음을 전했지만 아무런 반응 없는 직장동료들을 보며, 처음의 열정은 살아진 채 무기력함 가운데, 말뿐인 직장사역자로써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 직장과 직장동료들을 향해, 변화할 것에 대해 기대하고 계시고, 변화 될 것을 신뢰하고 계시고 실망치 않고 여전한 사랑으로 바라보고 계신 하나님의 마음을 보게 되면서, 그 마음을 시원케 해드려야겠단 결단과 함께 새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직장과 직장동료들을 위해 다시 기도할 것이며, 포기하지 않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의 삶을 살 것입니다.
결코 변할 것 같지 않던 내가 하나님의 끈질긴 사랑과 신뢰로 인해 , 변화된 것처럼, 전혀 가능성 없어 보이는 회사와 동료, 나아가 이 땅의 사람들도 하나님의 끈질긴 사랑과 신뢰로 변화되어질 수 있음을 보게한 2010년 이 여름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글로 읽으니 승화자매의 마음이 더 많이 읽혀지네
우리의 아픔과 현실을 해결한 이후에
주님께로 나간 경우는 아무도 없었던 것 같아...
자매의 아픔이 무엇이든 주님은 아시지...
그럼에도 복음을 위해 자매를 부르셨고
반응하는 승화자매를 통해 가능성 없어보이는
직장의 동료들이 변화 될 것을 기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