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루테이프의 편지 – 4편] 기도 속의 악마
사랑하는 웜우드 에게
.....이제야말로 '기도'라는 괴로운 주제를 적절히 다루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더구나.......
.....최선의 방책은 진지하게 기도할 마음이 아예 생기지 않도록 막을 수 있는 데까지 막아 보는거다.
네 환자(*)처럼 최근에 원수(*)편으로 복귀한 사람일 경우,
어렸을 때 앵무새처럼 따라 기도하던 버릇을 기억해 내도록 하는 게 아주 효과적이다.
그러면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제야말로 완전히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
내면적이고 비공식적이며 규칙에 매이지 않은 기도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거든.
초심자가 이런 생각을 할 경우, 사실은 의지와 지성을 집중시키지 않은 채 막연하게 경건한 기분만 만들어 내려고 애쓰는 꼴이 되는데도 말이야.
인간 중에 콜리지라는 시인이 있는데, 그는 자신이 "입술을 움직이며 무릎을 꿇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사랑을 위해 영혼을 가다듬었을 뿐이며 "기원의 감각"을 만족시킨 것이라고 쓴 적이 있지.
바로 이거다.
얼핏 보면 원수 편의 최고참들이 수행하는 침묵의 기도와 비슷하기도 하니,
영리하면서도 게으른 환자들을 오랫동안 속여넘기기에 딱 좋지 뭐냐.
또 설사 그렇게 까지는 못한다 해도, 육체의 자세와 기도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사기치는 덴 문제가 없을 게다.
혹시라도 이 작전이 실패하거든, 그때는 환자의 의도를 좀더 교묘하게 오도하는 술책으로 한 걸음 물러서야 한다.
인간들이 원수 자체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동안에는 참패를 면할 길이 없지만, 다행히도 그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길이 많이 있지.
개중 간단한 방법은 원수를 바라보고 있는 환자의 시선을 자기 자신에게로 돌려 버리는 것이다.
환자가 제 마음속만 줄창 들여다보면서 자신의 의지로 감정을 만들어 보려고 노력하게 만들거라.
환자가 원수의 사랑을 구하려 하거든, 실제로 사랑을 구하는 대신 사랑의 감정을 저 혼자 꾸며 내려고 애를 쓰게 하는 한편,
제가 이런 짓을 하고 있다는걸 눈치채지 못하게 하란 말이지.
용기를 구하려 하거든 마치 용기가 불끈 솟아나는 것처럼 느끼려고 애쓰게 하거라.
제가 원하는 감정을 꾸며 내는 데 성공했느냐의 여부에 따라 기도의 성패를 평가하게 만들라구.
사실 그런 종류의 성패란 그 순간의 몸 상태가 좋으냐 나쁘냐, 상쾌하냐 피곤하냐에 따라 달라지는 걸지도 모를 다는 의심을 혹시라도 하지 않도록 잘 처리하고.
물론 그 동안 원수도 놀고 있는 건 아니다.
기도의 자리에는 언제나 원수가 즉각 행동을 개시할 위험이 있지.
저나 우리나 순전한 영적 존재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체통이 있는 법인데도, 그 작자는 냉소적일 정도로 체통에 무관심한 나머지
인간들이 무릎을 꿇을 때 아주 창피스런 방식으로 자신에 대한 지식들을 쏟아 부어 준단 말이야.
하지만 원수의 저지로 의도를 오도하려는 첫 번째 시도가 실패한다 해도, 우리에겐 훨씬 더 정교한 무기가 남아있다.
인간들은 처음부터 원수를 직접 인식할 수는 없지.
불행히도 우리는 직접 인식하고 싶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지만 말이다.
우리 삶에 영원한 고통의 원인을 만드는 그 소름 끼치는 광채, 칼로 찌르듯 아프고 불로 지지듯 무서운 그 불길을 인간들은 절대 모른다.
기도하는 네 환자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면 알겠지만, 그 속엔 우리가 아는 원수의 이런 모습은 눈을 씻고 찾아도 없어.
그가 마음을 모아 기도를 바치고 있는 대상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아주 웃기는 요소들이 엄청 뒤섞여 있는 합성물이 보일 게다.
일단 원수가 '성육신'이라는 망신스러운 사건을 벌이는 동안 보여주었던 모습에서 나온 이미지가 들어 있을 테고,
다른 두 위격, 즉 성부와 성령에 관해서는 성자에 대해서보다 더 모호한 – 짐작컨데 꽤나 미개하고 유치한 - 이미지가 들어 있겠지.
숭배의 감정(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신체적 감각들)에서 나온 이미지들도 일부 있겠고.
환자는 주관적인 숭배의 감정을 객관화시켜서 그것을 곧 제가 경외하는 대상의 속성으로 생각해 버리거든.
나는 환자가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일컫는 존재가 어디 있는지 그 위치까지 짐작하던 경우들을 알고 있다.
(보통 천장 모퉁이 왼쪽이나, 자기 머리 속, 또는 벽에 걸린 십자가 같은 곳이지.)
그 합성물의 성격이 어떻든 간에, 너는 환자가 바로 그것 - 자신을 만들어 낸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 낸 그것 - 에 대고 기도하도록 붙들어 매야 한다.
환자를 잘 부추겨서 자신이 만든 합성물의 내용을 끊임없이 바로잡고 향상시키는 일에 큰 의미를 부여하게 하고,
기도하는 내내 그 합성물을 눈앞에 떠올리게 할 수 도 있지.
그런데 만에 하나 환자가 그 차이를 구별하게 되는 경우,
즉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 당신이 알고 계시는 당신'을 향해 의식적으로 기도의 방향을 돌리게 되는 경우가 발생 할 시에는 우리는 즉시 궁지에 빠지고 만다.
환자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생각과 이미지들을 모조리 내던져 버리기라도 한다면,
혹시 일부 남는다 해도 그 생각과 이미지들이 주관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전심으로 인정하는 가운데,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그 방 안, 자신의 곁에 실재로 존재하며 객관적으로 외재하는 그 존재에게 자신을 맡겨 버리기라도 할 때에는 그 이후의 일을 장담하기가 정말 어렵다.
그러니까 환자가 진짜 벌거벗은 영혼으로 기도하는 상황을 피하게 만들려고 할 때에는,
인간들도 사실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런 상황을 바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 도움이 될 게다.
그런데 때로는 그들이 실제로 바라고 기대하지도 못했던 것을 얻는 수도 있으니, 원!
너를 사랑하는 삼촌
Screwtape
- 발신자 : 스크루테이프 (고참 악마)
- 수신자 : 웜우드 (신참 악마, 스크루테이프의 조카)
- 환자 : 예수를 믿기시작한 그리스도인
- 원수 : 하나님
the Screwtape Letters (4편) - C.S. 루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