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주인이 여행을 가면서 종들에게 자기 재산의 일정부분을 떼어 관리를 맡긴다. 그 몫을 나눠줌에 있어 능력에 따라 5달란트 2달란트 1달란트를 맡기고 여행을 다녀온 후 종들에게 관리한 내용을 묻는다. 앞선 두 종들은 수고함으로 각기 이익을 만들어 다시 주인 앞에 서는 날 그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문제는 1달란트를 받았던 종이었다. 이 종은 주인에게서 받았던 돈을 땅에 묻어두었고 주인이 돌아오자 묻었던 땅에서 돈을 다시 꺼내어 주인에게 내민다. 그의 대답인 즉은 당신은 폭리를 취하고 재물을 탐하는 자(주인이 굳은 분이시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시는 줄로 알고)로 알았기에 혹여 돈을 잃을까 염려되어 땅에 묻어두었단다. 주인은 종의 변명에 노를 발하며 말한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너는, 내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 알았다. 그렇다면, 너는 내 돈을 돈놀이하는 사람에게 맡겼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내가 와서,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받았을 것이다.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서, 열 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주어라. 가진 사람에게는 더 주어서 넘치게 하고, 없는 사람에게서는 있는 것마저 빼앗을 것이다. 이 쓸모 없는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아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일이 있을 것이다.”
주인의 종에 대한 책망이 이익을 남기지 못함 때문이라 한다. 하지만 하늘나라의 법, 그리스도의 법에서 상급과 책망의 대상이 결과의 있고 없음과 그것의 크고 작음이라 생각되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종에 대한 주인의 책망은 더 나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았음, 않음에 대한 책망은 아니었을까?
둘.
왕에게 빚진자가 왕 앞에 섰다. 왕이 그에게 빌려간 1만 달란트를 변상하라 했으나 갚을 능력이 되지 않는다. 왕은 가족과 그의 모든 것을 팔아갚으라 하자 빚진자는 꿇어 엎드려 빌며 왕에게 긍휼을 구한다. 왕은 그를 측은히 여겨 빚을 탕감해준다. 빚진자, 아니 빚이 있었던 자는 궁을 나가는 동안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자를 만나 그에게 빚 독촉을 하다가 감옥에 가둬버린다. 후에 이 소식을 접한 왕은 그자를 불러 ‘이 악한 종아, 네가 간청하기에, 내가 네게 그 빚을 다 삭쳐 주었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긴 것처럼,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겼어야 할 것이 아니냐?’ 라고 말하며 감옥에 가두어 버린다.
어려서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이야기에 공감하고 탕감받았던 그 사람이 너무도 악하게 느껴졌었는데, 지금은 그 탕감받았던 사람에게 나름의 공감이 가는건 돈을 알고, 벌고 나서 나도 모르게 점점 악해져 가기 때문이겠다. 마음 한구석에서 내가 탕감받은 빚과 내가 받아야 할 빚은 전혀 별개의 것이지 않느냐고 항변하는 나는 참 이기적인 죄인이다.
지난 한해 나는 내게 주어진 달란트로 소중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이었을까? 그리스도는 심지않고 거두는 분이라 판단하며 땅에 묻어둔 채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는가? 나의 것과 나의 자리를 지키기에 급급하고 부족함에도 더 나빠지지 않았음을 이야기 하고 자위하며 살아가는건 아닐까?
주인의 종에 대한 책망은 이익 없음이 아니라 주인에 대한 무지함과 그 무지함에 따라서도 행하지 않음에 대한 책망이었고 더 나을 수 있지만 그리하지 않음에 대한 책망이었다. 어쩌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더 나아질 수 있지만 생각의 나태함과 몸의 게으름으로 하지 않는 것이 죄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닐까..
1 데나리온은 로마 은화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을 의미하고 이는 그리스은화 1드라크마와 비슷하다. 1 달란트는 6000드라크마 즉 6000일에 해당하는 품삯이다. 만약 1일 품삯을 5만원으로 가정한다면 1 달란트( = 50,000 × 6,000 = 300,000,000 )는 3억에 해당한다. 그러면 1만달란트와 500데나리온은 3조와 2500만원으로 비교하면 될 듯하다.
3억을 땅에 묻어둔 어리석음과 3조를 탕감받고 2500만원을 탐하는 욕심과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의 완악함.
내 안의 어리석음과 욕심이 이것과 다를 게 없음이 두렵다.
만약 지금 그리스도 앞에 선다면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어 감옥에 갇혀 슬피울며 이를 갈아야 할듯하다.
나는...
귀한 나눔에 감사드립니다. 깊은 묵상이 은혜의 깊이를 더함을 느낍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지 않도록 또 용서에 인색하지 않도록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