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평강과 안식이다.

아무리 지식이 많고 돈을 많이 벌어 힘과 능력이 있다해도 

인생은 궁극적으로 평강과 안식이 없다면 허무한 인생이 된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많이 경험하여 그 능력에 대한 자부심과

기대감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유대인들도 절대적인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을 

그 어느 민족보다도 많이 경험하여 상당한 지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들 스스로 선민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하나님의 능력을 많이 경험하였다 하더라도 

하나님 자신을 알지 못하면 인생은 허무한 인생이 된다 

저들은 하나님의 능력은 많이 경험했지만 정작 하나님 자신은 알지 못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력을 주기 위함이 목적이 아니었다

하나님 자신을 알고 자신의 대신할 사람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본체이신 아들 예수를 이 땅에 보내셨다

이 아들은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며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기 위함이 목적이었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려면 아들이 생명이 아니면 안되기 때문이다.

 

옛 생명 즉 아담안에 생명은 속이는 자에 속은 생명이기에  무엇을 해도

속은 자로 살아가게 되어 자기의 영광과 목적을 루기 위해 살아가게 되지

하나님 나라와느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사는 생명인 것이다.

 

십자가 예수안에서 발견된 새 생명이 아니면 무엇을 해도 헛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버지와 나와 하나이듯이 저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라는 영원한 기도를 하고 계시는 것이다.

십자기에 죽고 다시산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연합의 본성을 가지게 된다

이 연합의 생명은 건축을 이루는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생명이 된다

 

성경은 이 생명을 위한 책이다  즉 그리스도라는 재료를 얻어 이 재료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함이 목적인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통해서 십자가에 죽고 다시산 예수와 함께 죽으심에 연합하고

살으심에 연합하면 그 생명이 되어 무엇을 해도 주의 나라와 영광을 위한 삶이

되는 것이다.

 

벌이 벌집을 자동적으로 짓게 되고 , 개미의 생명이 되면 개미의 집을 짓는다

마차가지고 죽고 다시산 그리스도의 생명이 되면 자동적으로 그의 나라를 위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인생은 지어진 용도가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이다 

지어진 것이 지어진 용도대로 쓰이지 않으면 절망이요 허무이다. 

반대로 지어진 용도대로 쓰이면 축복이고 만족이고 기쁨이 되는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를 염려하지 말고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그 모든 것을 이루리라"...............

아담의 영광은 소유에 있지만 그리스도의 영광은 생명에 있다

육신의 소유는 늙고 병들면 아무 것도 소용이 없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생명은 영원한 것으로 날마다 새롭게 자라며

시절을 쫒아 열매를 맺는 생명인 것이다. 

그래서 어제 보다 좋지 않은 오늘이 없이 늘 새롭게 자라는 것이다

 

새롭게 새롭게 하소서...라고 기도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새 생명이 되면 늘 새롭게 된다 

오늘도 내 앞에 이렇게 새로운 생명을 말씀하시고 알려주고 보여주는 분이 

있다는 것이 최고의 복이다.

이 새 생명안에서 내 뜻이 없고 오직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질 때 

인생은 참된 평강과 안식이 있는 것이다. 

 

인생의 영원한 복으로 오신 주님을 영원히 찬양합니다. 

함께 갑시다 내 아버지집 참된 기쁨이 있는 곳......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