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의 생각과 욕심에 따른 거짓 예언을 한 선지자 하나냐의 결과는 심판, 죽음, 쇠의 멍에 였다.

 

사탄의 전략은 달콘함과 미혹과 속임과 거짓을 믿게하는 것이다.

음부의 권세에 떨어질 때마다 우리는 어둠과 사망과 불평과 원망과 모든 소극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주님은 길이요, 빛이요, 생명이다.

우리가 빛 안에 거하고, 주님과 교통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생명과 능력과 기쁨과 화평과 모든 풍성한 실질적 체험들을 하게 된다.

오직 한가지 길만 있을 뿐이다. 이길 저길 두 길이 있지 않다.

오직 한 길, 오직 한 빛, 오직 한 생명, 오직 한 보좌, 오직 한 예루살렘, 오직 한 하나님만 있을 뿐이다.

 

자기 자신에게서 나온 개인적인 생각과 감정에 주의해야 한다.

나 스스로, 독립적이며 개인적으로 산출하는 모든 '자아'는

이 한 길, 한 생명의 길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성령)을 담는 그릇이다.

그 영으로 점유되고 그 영 안에 거하며, 그 영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그 안에서 참된 생명의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레미야의 예언과 하나냐의 예언 속에서 하나님의 길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

지금 시대에 우리 주위의 환경과 각자의 개인적인 길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길을 분별할 수 있을까?

나는 지금 하루 하루의 삶 가운데, 인생의 진로 속에서, 사역의 흐름 속에서

하나님의 길을 어떻게 분별해야 할까?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그 영에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그 영의 흐름과 교통안에 있어야 한다.

그 영과 떨어져서 분리되고 독립적인 생각과 사고에 거하는 순간

나는 그 하나님의 길을 놓치고 말 것이다.

그 영 안에 거할 때, 생명의 느낌은 언제나 분명하다.

빛과 평안과 기쁨과 화평과 사랑과 감사와 소망과 견고함과 담대함이 나를 온통 사로잡는다.

 

빛 가운데서 벗어나면, 내 안에 서서히 차오르는 것은

어둠과 탐욕과 사망과 미움과 성급함과 불평과 답답함과 의심과 나약함과 두려움 등이다.

이 상태는 분명 경고의 신호이다.

이때에는 신속히, 또 조용히 주님을 찾아야 한다.

말씀을 붙잡거나, 기도하거나, 조용한 가운데 그리스도의 영을 접촉해야 한다.

다시 성령으로 충만되고 회복되고 주님으로 적셔질때, 주님은 분명 선한 길을 보여주실 것이다.

분명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내겐 예레미야와 하나냐가 늘 함께 나타날 수 있다.

어느 목소리를 청종하느냐는 나의 영적 상태에 달려 있다.

 

오! 주님

오늘 하루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의 생명의 교통과 생명의 빛 안에서 살게하소서.

하나냐의 거짓을 분별하는 힘과 능력이 되소서.

예레미야의 진실을 듣고 회개와 순종의 길을 선택하소서.

오늘도 육체의 나는 죽고 생명의 그리스도가 나를 통해 살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