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굽생활을 지적해주신 주님
사실 죄사함을 받았다는 것이 개인에게는 대단한 일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변화된 삶이 없다면 죄사함은 받았을지 몰라도 그는 여전히 애굽에 있는 자이다. 중국에서 내가 바로 애굽에 있는 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국교회 안에서 사는 내 모습을 본 한 노인 형제의 작은 권면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중국교회에 들어 온 나는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나의 모습은 여전히 천연적이고 육신적이었던 같다. 작은 충격에도 얼굴과 생각에 변화를 보이는가 하면 때때로 감정에 사로잡히는 모습이 보였던 같다. 그리고 나의 말과 행동 가운데 세상을 사랑하고 추구하는 모습이 잡혔던 모양이다.
사실 난 그러했다. 구원받은 지 25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나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구원받았으니까, 천국행 표는 사 두었으니까 하는 생각으로 적당히 살았다. 어떻든 지옥에 가지 않는다는 생각이 나를 세상에 묶어 두었다. 솔직히 세상 사는 것이 편했다. 지옥에는 가지 않는다는 것이 내 마음을 담대하게 하여 죄짓는데 심상하였다. 어느 면에서는 세상 사람보다 못하였다.
중국 형제님이 생각했을 때는 내가 구원받은 지 25년이 넘은 형제임으로 무엇인가 달라도 다를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터인데 나의 모습에서 여전히 세상 티를 벗지 못하는 완전히 천연적인 사람의 모습을 보셨던 것이다. 하루는 옆을 지나며 “형제님 애굽생활이 즐거우시지요” 한다. 난 어떨결에 “예-에” 하고는 넘어갔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중국생활이 즐거우시지요 라고 말씀하신 것을 내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난 분명 애굽생활이 즐거우시지요 하는 말을 들었다. 왜 그런 말을 하셨을까? 몇 주일이 가도 아무 말이 없으시다. 가까이 다가가면 다른 곳으로 피하신다.
내 양심과 얼굴은 수심으로 가득 차 흘렀다. “애굽생활이 즐거우시다니” 이것이 무슨 말인가. 그럼 내가 아직 애굽에 있다는 뜻 아닌가? 그럼 내 구원을 의심하고 있는 것일까? 틀림없다. 내 구원을 의심하고 나를 담 넘어 들어 온 자라고 생각하는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에 미치자 숨이 차 올랐다.
온 몸이 굳어지고 머리 속이 무엇인가 모를 엉클어진 것으로 가득 차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도둑질하다 들킨 사람처럼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그 많은 사람들이 반기며 웃던 얼굴이 비웃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당장 달려가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혹시 중국생활이 즐겁지 않느냐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형제의 얼굴을 다시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용기를 내어 전화기를 들고 다른 형제분께 어떤 형제님이 나를 보고 애굽생활이 즐겁지 않느냐고 하셨는데 그것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그 분은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유월절 양을 누리고 모세를 따라 애굽을 탈출했지만 상당한 사람들이 애굽에 그대로 남아있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 나도 애굽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남아있는 자이고 그리고 더욱 구원을 받지 못했을까 라고 물었다. 그러나 그 분은 주님께 물어 보세요 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럼 나는 애굽에 남아 있는 자라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구원도 못받은 자라는 것인가.
내게 참으로 인내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작은 한 마디도 넘기지 못하고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바로 나의 자화상이었다. 구원받은 지 25년이 넘었다는 사람의 태도가 이랬다. 냄비 죽 끓듯 한다는 말은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내 모습이 과연 주님으로 변화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었다. 구원받았을 때 그 모습에서 조금도 변화되지 않은 천연적인 사람 그대로였다.
주일날을 기다려 용기를 내 노인 형제님을 찾았다. 형제님은 조용히 웃는 얼굴로 나를 맞으며 내 말을 듣기도 전 모든 것을 아신다는 듯이 “형제님 출애굽기를 자세히 읽어보세요” 라고만 말하고 다른 곳으로 가신다. 난 뒷모습만 멍하니 쳐다 볼 뿐이었다.
내가 본 중국교회는 모든 면에서 이런 식이었다. 가르쳐 주지 않는다. 단지 인도한다. 주님을 직접 찾고 주님께서 답을 주시도록 방법을 인도해줄 뿐이다. 나중 안 일이지만 조금 안다고 하는 지식이 주님과의 교제를 막는 것이었다. 주님과의 직접적인 응답이 중요하다.
주님이 곧 길이요 실제(진리)이며 생명이라는 것을 철저히 인식하게 하였다. 자기가 아는 지식과 경험으로 말하지 않는다. 사람의 것으로, 이 세상의 지식과 경험으로 하나님의 어떤 것도 만지지 못하게 한다. 사람이 개입함으로서 오는 원망과 시비의 근본을 처음부터 용납하지 않는다. 이것은 오랜 영적 경험과 성장가운데에서 터득한 하나님 사람들의 지혜일 것이다.
중국 교회에서 내가 느낀 가장 큰 것은 결코 가르쳐 주지 않을 뿐 아니라 가르치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는 무엇을 조금이라도 알면 누구에게라도 말하고 싶고 가르치고 싶어 안달을 하였다. 모든 답은 주님께 있다는 것이었다. 나 같은 사람을 아셨는지 주님은 일만 스승이 있다고 했는지 모른다.
중국 형제들은 가르쳐 주기를 원해도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의 입장이 같지 않기 때문이란다. 같은 부모 자식간이라도 입장과 환경이 다 다른데 어떻게 어느 한 사람의 아는 것과 경험이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오직 내 사정과 환경은 주님만 아신다고 말한다.
때문에 집회가운데에서도 주님을 경험한 간증 외에는 말하지 않는다. 자기를 통과한 주님을 증거할 뿐이다. 성경 지식도 사람마다 다르게 깨달을 수도 말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성경의 어떤 말을 하여도 상대가 그렇게 깨달았는가 보다고 넘어간다. 이것이다, 저것이다, 아니다 라고 말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용납하는 넓은 마음이 있다.
모른 것,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주님으로 가지고 간다. 그리고 묻는 이에게 언제나 한결같이 주님께 물어보라는 대답 외에는 다른 말이 없다. 나의 머리털까지 세신 주님만이 나의 모든 것을 아신다는 말씀들!
출애굽기를 읽으면서 나는 스스로가 애굽에 있는 자임을 발견하였다. 애굽에는 세상의 아름다운 것과 내가 추구하고 바라는 명예와 지위가 있는 바로의 궁전이 있었다. 맛있는 음식과 보기에 좋고 내가 갖고 싶어하는 많은 것들이 있는 곳이었다. 나는 아직도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간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유월절 양을 같이 먹기는 했어도 애굽을 탈출하지 못하고 여전히 애굽 바로의 궁에서 사는 바로 그 자신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었다. 내가 애굽을 탈출하여 광야로 나온 사람이라면 나의 모습과 행색과 말과 보는 것과 아는 것이 달라질 것은 당연하다.
애굽의 생활이 가끔 생각은 났을 터이지만 보이는 것은 모래와 자갈뿐인 광야의 사막과 나를 인도하는 불기둥과 구름기둥이신 하나님이 있을 것인데 그렇지 않았다. 내 안에는 세상의 명예와 끊이없는 지위와 아름다운 것들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었다. 나를 인도하시는 구름기둥이시고 불기둥이신 주님은 없었다.
그리고 내 안에 순종의 영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주님이 죽도록 순종함으로 얻은 구원이지만 나에게는 순종이 없었다. 출애굽기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거역하는 말이며 행동 하나 하나가 나였다. 내가 그곳에 있었다면 모세를 향해 그들보다 더 심한 저주와 원망을 퍼부을 사람이었다.
나는 홍해를 건너기 전 애굽 군대의 추격하는 소리에 기력을 잃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스스로 애굽으로 돌아갔을 사람이었다. 고라의 거역현장에 참여했을 것이며 그보다 먼저 하나님의 저주로 음부에 떨어졌을 사람이었다. 나는 얘굽에서 나온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 나를 사랑으로 이끌어 주고 좋은 꼴로 먹여주는 변함없는 형제들의 사랑을 조금 이해한 것은 한참이 지난 후였다. 나는 말이 많았다. 형편없는 한국교회는 왜 그렇게 들먹였는지 모른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하는데 저렇게 하는데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순종하는 영이 없었다. 이미 교회 안에 들어와 빛을 보았고 주님을 내 눈으로 목도했는데도 불구하고 형제들의 어떤 것들이 괜히 걸렸다. 나는 애굽에 있는 자였다. 여전히 애굽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그것이 내 모습이었다. 나는 구원만 받았지 어린 아이였다. 나이를 헛먹었다.
기다리는 인내도 말씀 속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소경이었다. 예수의 피를 헛되이 흘리는 일에 참여하는 혈루병자가 바로 나였다. 마음 가운데 원함은 있으나 자신의 힘으로는 한발작도 때지 못하는 중풍병자였다. 난 애굽 땅에서 한발짝도 옮기지 못한 앉은뱅이나 다름없었다.
구원 받은지 3-4년이 채 안된 형제님들의 모습에서도 그리스도를 닮은 순종이 확연히 드러난다. 아니오가 거의 없다. 모두가 예이고 아멘이다. 악한 자도 자기에게 잘하는 자에게 잘하는데 좋은 것으로 주는 형제들에게 좋은 것으로 주고자 하는 마음이 어찌 없을까 한다. 자기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잘하라는 말씀을 듣는 것이 순종이라고 말한다.
형제가 나쁜 것으로 주지 않는다는 말을 인사처럼 한다. 아무리 작은 형제라도 그를 형제로만 보지 않는다. 육체로 보지 않는다. 그 안에 계시는 주께 대하듯 순종한다. 개 눈에는 개만 보인다는 말이 나를 두고 하는 말 인양 싶었다.
주님의 형제들은 육체로 보지 않고 주님만 본다. 육체로 보는 자는 육체 가운데 있는 자라는 자기 간증이다. 바로 나였다. 교회만 오래 다녔고 나이만 먹었지 육체는 변하지 않았다.말로는 애굽에서 나온 곧 구원을 받았다고 했지만 나의 나머지 어떤 것도 변하지 않았다.
생각도 세상에 있었다. 돈과 입을 것과 먹을 것을 걱정하고 세상의 명예와 지위를 탐하는 마음이 여전히 내 속에 존재하였다. 그러니 애굽생활이 즐겁지 않느냐는 얘기를 들어도 쌌다. 말은 그 사람의 어떠함이다. 내게서 나오는 말과 행동이 애굽사람과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구원이 무엇인가를 알려주신 주님
내가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한 것은 놀랍게도 나의 생각이었다. 내가 다니던 교회에서 말하는 구원이었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구원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의 상태를 정확히 말하면 죄사함 받은 것에 불과하였다. 그간 나는 죄사함을 구원이라고 생각하고 만족하며 살았다. 구원은 받았으니 천국은 간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
천국가는 표는 이미 사두었다는 생각으로 참으로 느긋하고 편안하게 살았다. 이 세상에서 천국을 보지 못하면 천국에 갈 수 없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죄사함 받은 후 얼마동안은 얼마나 편안하고 좋은지 하루하루가 천국과 같았다. 그러나 한두 번 죄를 지를 때는 불안하고 불편한 마음도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심상해지기 시작했다. 지난 죄 뿐아니라 앞으로 질 죄까지 모두 다 하나님이 사해주셨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어느 날부터인가는 이방인보다 더 못한 자신을 볼 수 있었다. 이방인보다 오히려 죄를 짓는데 빨랐고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분위기였다. 내 스스로도 내가 정말 구원받은 사람인가 할 정도로 자신을 뒤돌아보며 실망하기까지 했다. 교회의 앞서 간다는 사람들 또한 사정은 나와 다르지 않았다. 교회 전체가 단체적으로 죄를 짓는데 앞장서는 일까지 있었다.
그후부터 구원은 받았으니 천국에 갈 것이라는 믿음과 양심과의 싸움은 계속되었다. 즐겁고 아름다운 생활이 어느 날부터 괴롭고 힘든 신앙생활로 변해 갔다. 그러한 생활을 하는 반면 죄사함 받지 못한 사람은 사람과 같이 보이지도 않았다. 지옥에 던져질 이방인이라고 무시하였다. 그 때까지 나는 죄사함 받은 것이 구원이라고 생각했으니 그러했을 것이다.
내가 중국에 들어와 교회에서 구원간증을 할 때이다. 나는 한국에서 간증하듯이 말미에 " 주께서 내 죄를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다시는 내 죄를 기억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라는 말로 간증을 맺었다. 간증이 끝나 말을 멈추었는데 내 간증을 듣던 많은 분들이 무엇인가를 더 듣기를 바라는 눈치로 계속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때 그들은 내가 죄사함 받은 부분이 너무 감격스러워 잠시 말을 멈추고 있는 것 아닌가 하고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그러나 제가 더 이상 아무 말이 없자. 한 분이 조심스럽게 "다 끝나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끝났다고 하자 좌중은 조용해졌다. 집회가 끝나고 나서 제게 몇 분이 다가와 등을 두드리며 감싸 안아주시고 위로도 해 주셨다. 그러나 내 마음은 솔직히 편치 않았다. 어딘가 내 간증이 부족하다는 그분들의 느낌을 즉각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간증을 듣고 좋아하는 눈치가 완연하고 찬송가를 같이 부르고 즐거워할 터인데 그렇지 않았다. 그 때 나는 중국에서는 이렇게 하는 것인가 보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내 간증이 끝나고 나서 몇 형제님들이 죄사함받은 것은 이제 시작이며 앞으로 가야할 길이 멀다는 얘기를 하셨다. 나는 처음 구원받은 사람에게 해주시는 당연한 격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 후 다른 분의 구원간증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간증의 배경과 내용은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분도 죄사함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그보다 조금 더 나아가 주님의 부활생명이 자기 안에 들어와 거처를 정하시고 자신을 교회 안으로 인도하였다는 말이 덧붙여졌다. 길이로 따지면 2-3분정도 더 말을 하였다. 그런데 회중의 반응과 태도가 내가 하던 때와는 너무 달랐다. 너무 열광적이고 좋아했다. 나의 간증과 그분의 간증의 차이는 무엇일까 고민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나의 간증은 물 침례의 결과를 말한 것이었고 그분은 성령의 침례를 말한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나는 죄사함의 간증을 말하였고 중국형제님은 새 생명으로 거듭난 간증을 말한 것이었다. 나는 너무 힘들었다. 잘 먹던 음식 맛도 완전히 떨어졌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손이 모두어 지지 않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한편 누가 뭐래도 나는 구원받은 것이 확실하다는 생각이 마음속에서 크게 외쳐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일 뿐 안정되지 않았다. 그러면 그간 25년이 넘는 신앙생활이 헛된 것이었던가를 생각하니 미칠 것 같았다. 나는 어디서든 우군을 만나고 싶어 한국에 전화를 하여 내 구원이 잘못 된 것인가를 검증하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밤이면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내가 만일 구원이 아니라면 지옥 불에 들어간다는 생각이 너무 강했는지 눈을 감으면 훨훨타는 불이 눈가에 아른거렸다. 잘못하면 돌아 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다.
교회에는 다시 나가고 싶지 않았다. 며칠을 지내는데 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러나 그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앉았다 섰다를 몇 번 반복하다가 다시 집회소에 나갔다. 문 앞에서 빗자루를 들고 계시던 노 형제님이 빙그래 웃으시며 지나치듯 "힘이 들면 하나님께 물어보실 일이지 왜 집에서 방바닥하고 벗하고 사는지?" 라며 던지시는 말이 온 몸을 불같이 달군 것 같이 올라왔다. 나는 용기를 내어 나오지 않는 말을 겨우 뱉어냈다.
"형제님. 날 좀 살려주세요. 저 너무 힘들고 괴로워요. 전 절대 지옥에 갈 수 없습니다. 내가 진짜 구원을 못받았다는 것이 이해가 않되지만 그러나 구원을 받지 못했다면 나를 하나님께 인도해 주셔야지요."
"저는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하고는 뒤돌아서 가시는 뒷모습을 보다가 주저앉아 버렸다. 하늘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집회소 안에서 들리는 찬송시 소리가 남의 나라에서 들리는 것처럼 나와 상관없이 들렸다 .다시 돌아갈 까 망설이고 있는데 언제 오셨는지 형제님은 내 간증을 들어보니 거듭나는 것과 죄사함받는 것을 혼돈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하시면서 요한복음 3장을 한번 읽어보라 하시고 뒤돌아 가시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요 3:3-7)
이 구절은 않보고도 외울 수 있을 만큼 친숙한 구절이다. 주님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집에 돌아와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분명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다는 생각이 분명했다. 다음 날을 기다려 다시 집회소에 가서 형제님께 물었다. 나는 분명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큰소리로 항변하듯 말했다.
형제님은 조용히 웃으시며 마가복음 1장을 읽어보시면 깨닫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만 하셨다. 거기에 무엇이 있느냐고 하니까 나는 성경이 없으시다고 하시며 뒤돌아 서셨다. 나는 재빨리 집에 돌아와 마가복음 1장을 읽어 보았다. 그런데도 아무 곳도 없었다. 도대체 마가복음 1장에서 무엇을 보라는 것이냐고 짜증을 내었다. 주님은 눈을 감은 사람을 소경이라고 하지 않으셨다. 내가 바로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는 소경이었다.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세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요한은 약대털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그가 전파하여 가로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 (막 1:3-8)
그렇게 많이도 읽은 마가복음 1장인데도 요한이 광야에서 전한 것이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라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요한이 전한 죄사함의 회개의 세례가 물 침례였다. 내가 지금까지 금과옥조처럼 붙들고 있던 죄사함이라는 것이 요한의 물 침례에 불고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나는 예수의 제자가 아니라 요한의 제자에 불과하였다.
주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성령의 침례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 앞에서 긴 한숨이 터져 나왔다. 기가 막혔다. 지난 30년에 가까운 신앙생활이 눈앞에서 흐물거리듯 없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간 헛 다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허망하다는 생각이 몰려왔다. 마치 목숨을 담보한 사기를 당한 것과 같은 아슬아슬한 감이 지나갔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지금이라도 이것을 알았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세게에서 제일이라고 그렇게 장담하고 믿었던 교회생활과 그로부터 얻은 결과가 이것인가 하는 무력함이 다가왔다. 나는 죄사함 받았으니 천국에 가는 것은 따논 당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그것이 겨우 요한의 물침례에 불과하였다니(막 1:4),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죄사함을 얻은 후 다음으로 성령침례 없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요 3:5)을 알게 되었다. 그간 숙제처럼 생각되던 요한복음 3장의 주님과 니고데모와의 대화가운데에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었다
난 그 후 어느 날 주님의 새 생명이 제 안에 거처를 정한 사실과 교회를 본 사실에 대하여 간증할 수 있었다. 그때의 열기와 열광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집회중인데도 이곳저곳에서 형제자매님들이 달려와 저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시며 좋아하셨다. 중국형제님들은 그날 제가 구원받은 것으로 확신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후 며칠이 지나 흐르는 강가에 나가 침례를 받았고 교회 안에서 안수를 받았으며 보이지 않는 교회의 양육이 시작된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 후 나는 2년여 기간동안 과거 30년간 한국교회에서 본 것보다 훨씬 많은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한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생각할수록 과거의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참으로 큰 일 날 뻔 한 사람이었다. 죄사함 받았다고 좋아하면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고 죄사함 받지 않은 사람들을 무시하던 사람들이 불쌍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 좋아하고 금과옥조처럼 생각하던 그 죄사함 받은 것이 겨우 요한의 물 침례라는 것을 알고 나니 그에 만족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연민의 정과 함께 기도가 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죄사함을 구원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으로 만족해 버렸던 것이다. 죄사함은 가나안을 향한 첫발을 옮기는 시작인데 그런데 그것이 다라고 생각하고 만족하였다. 첫 단추부터가 잘못 끼워졌었던 것이다. 눈물이 흘러 내렸다. 주여 나를 인도하소서 라는 기도가 눈물과 함께 흘러 나왔다. 이 일이 동기가 되어 난 다시 침례(홍해)를 받았다. 내가 애굽(세상)에서 나와 홍해가운데에서 내 옛 사람은 죽었고 보라 이제 새 사람이 되었다고 세상과 주님을 향하여 선포하고 싶었다. 부활의 새 생명을 발견하고 교회로 인도되었다.
간증을 가르쳐 주신 주님
내가 중국에 들어간 것은 내 의지와는 거의 상관이 없었다. 당시 나는 중국에 들어가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한국에 머물 곳이 없었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었기 때문이다. 집안에 있다는 것도 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간 이십 몇 년을 직장에 다녔으니 오랜만에 휴가를 얻은 셈치고 푹 쉬자 라는 생각은 얼마를 지내는데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침만 들면 어디론가 나가야만 했던 생활패턴을 바꾸기가 어려웠다.
아이 엄마와 함께 산에도 오르고 그간 소홀히 했던 일들을 정리하곤 하였지만 마음이 편치않았다. 휴가를 얻어 쉬는 것과 일없이 쉬는 것과는 천양지차가 있었다. 그래도 삶의 리듬을 잃지 않기 위하여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보지만 마땅히 할 일도 없고 갈 곳이 없는 상황에서 답답했다.
그렇다고 성경이 머리에 잘 들어오는 것도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이 원망스럽고 기회가 오면 다시 내 자리를 찾을 것이라는 허상이 머리 속을 맴돌며 떠나지 않았다. 당장 할만한 마땅한 일이 없었다. 나를 써 줄 곳이 없었다. 실업자가 우글거리는 사회분위기에서 비집고 들어갈 공간은 바늘구멍보다 좁게 느껴졌다.
대학,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보면 숨이 크게 내쉬지 않았다. 아이들 얼굴도 근심이 서려있고 집에 있는 아버지 눈치를 살피는 아이들의 눈망울이 슬프게 느껴지곤 했다. 몇년 공부를 하자. 몇 년을 지나면 어떤 기회가 오겠지. 아이들 수업료 걱정도 덜 겸 쳐다보는 눈이 없는 외국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나를 중국으로 내몰았다.
중국에 왔다고 마음속에 묻힌 어두움과 답답함이 펴지는 것은 아니었다. 아는 이라고는 아무도 없었다. 외국에 들어와 산다는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그러나 포기가 되었다. 화를 내도 소용이 없었고 오히려 가족들 간의 사랑마저 멀리 가는 것 같았다.
나 외에 우리 가족 모두 중국어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시장에 나가 물건을 사는 것부터 사소한 일 하나 하나를 혼자서 해야 했다. 다행히 아이들 중국어 공부를 시키러 오시는 분이 구원을 받았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성경을 대하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 몇몇이 구원을 받으면서 자그만 모임이 우리 집에서 시작되었다.
이 일 후 중국교회에 연결되었다. 또한 중국 땅에서 일자리를 잡게 되었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대학원 학생들의 논문지도와 강의를 겸한 학생지도를 맡았다. 더욱 다행인 것은 내가 살고 있는 울안의 대학 교수가 된 것이다. 우리 가족이 중국에 들어와 세를 살았는데 세를 살던 집이 내가 근무하게 된 대학의 교수 아파트였다.
외국 유학생을 모집하게 되었고 유학생 숙사가 마침 외국인 교수 아파트에 같이 들어 나도 그곳으로 집을 옮겼다. 자리를 잡고 나니까 지난 시절이 쉽게 잊어졌다. 언제 그런 세월이 있었는가 싶을 만큼 마음은 조금씩 편해 갔다. 외국인으로서 중국 사회에 빠른 시간에 안착한 셈이었다. 외국인 교수라고 이야기하면 주변 사람들이 알아주기도 했다. 그럴 즈음 중국교회에 연결되었다.
중국 교회는 여러 면에서 한국과 달랐다. 한국에서 나의 신앙생활 경력은 비교적 오래된 편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어린아이에 속했다. 분별력이 많이 떨어졌다. 중국교회는 성경말씀을 강론하는 지식방면에 힘쓰기보다 삶 가운데에서 경험한 간증이 중심이다. 입을 여는 때가 있으면 지난 시절을 간증 서두에 붙이기 일 수였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내 간증을 듣고 있던 노인 형제님 한 분이 집회가 끝나기가 무섭게 가까이 다가와 형제님의 간증에는 하나님이 안 계신다는 것이다. 다음에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한단다. 얼마나 직설적인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부끄러웠다.
당시는 너무 당황했지만 형제 사랑이 없다면 그런 이야기는 할 수 없다는 것이 이해되었다. 간증을 할 때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하기보다 가끔 나를 꾸미고 있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내 양심이 그것을 시인하고 있었다.
형제님은 내 손을 꼭 잡으시고 고맙다는 말씀과 함께 다음 기회에 다시 해 보라 하신다. 내가 어떻게 라며 거북한 표정을 짓자 형제님은 모든 분들이 다 느끼는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한번만 고치면 주님이 언제나 입을 지켜주실 것이라고 하셨다.
그날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느 날 직장과 나의 모든 것을 잃었다. 나는 정부 연구소의 상당한 직위에 있었다. 나는 지금은 크게 성공한 분의 정치적 후견인으로 그분의 재정문제와 정책 브레인으로 활동하였다. 그런데 그분과 정치적 라이벌 관계에 있던 분이 제가 후원하는 분을 꺽기 위하여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나를 불러 모든 것을 캐내기 시작했다.
갖은 고초를 겪었다.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십여 년 다녔던 직장에서 퇴직금 하나 받지 못하고 나오게 되었다고 나를 미화시켰다. 사실 그간 나는 구원만 받았을 뿐 말씀 안에 살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러한 나의 어떠함을 아시고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환경 가운데 집어넣으셔서 하나님 앞으로 돌이키도록 역사 하셨다는 요지의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드러난 것만 이야기 한 것일 뿐이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틀린 얘기는 아니다. 겉으로는 사실이다. 마음 속 깊이 숨겨진 진실은 은폐하고 나의 의만 드러낸 것이다. 말로는 하나님의 긍휼을 얘기하지만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다. 형제님은 나에게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것이다. 내가 아무 잘못이 없는데 하나님이 결코 나를 그 자리에서 들어내지 않으신다는 얘기였다. 내가 잘못하여 그런 일이 생기지 나의 잘못이 없는데 하나님이 나의 상을 엎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사실 난 거짓말을 했다. 나의 처지를 아름답게 꾸미고 있었다. 허탄한 말을 하고 있었다. 다시 말을 고치고 싶었지만 혼자서는 듣지 않으시겠다 한다. 하나님께 여쭈라고만 하신다. 말이 그렇지 간증을 다시 한다는 것은 결국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고, 죽기보다싫은 것이었다.
다음 날 부끄럽지만 다시 간증을 하겠다고 했다. 어제 거짓간증을 했다고 말했다. 모두 조용했다. 나는 있는 그대로 얘기했다. 나는 아주 천연적이고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구원받은 지 오래 되었지만 난 변화되지 않은 형편없는 사람이었음을 고백한다. 나는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높임 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던 중 아시는 분이 상당한 직위에 도전할 시기가 왔다. 나는 있는 방법 없는 방법을 동원하여 그 분이 당선될 수 있도록 정책적 재정적인 일을 꾸몄다고 말했다. 듣는 이들의 얼굴이 어제와 달랐다. 머리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태도였다. 내 말이 진실하게 들렸던 것이다. 내 간증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던 형제님의 얼굴도 달랐다. 머리를 계속 끄덕이고 계셨다.
간증은 경험한 하나님을 증거 하는 것이다. 나의 불의와 죄를 씻고 계시는 주님이 간증 안에 살아 계셔야 한다. 나의 첫 번째 간증은 나의 의만 있었다. 우리의 간증가운데는 거짓이 있다. 한국에 돌아와 여러 분의 간증을 들었지만 내가 했던 것처럼 솔직히 자기 의만 들어내는 간증들이 많다는 것이 보였다.
하나님 편에서 보면 실로 가증스러운 얼굴을 내보이는 얘기를 간증이라는 말로 포장하여 말하고 있었다. 자신의 믿음이 누구보다 좋다는 것을 말하고자하는 사람의 간증일수록 그랬다. 얼마나 많은 간증들이 사람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자의적으로 저질러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또한 하나님의 크신 긍휼이었다.
하나님은 선한 사람을 궁지에 넣지 않으신다. 선한 사람이 잘못되는 일이 없다. 내가 잘못하고 내가 죄를 범함으로 고난과 궁지에 빠지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나의 불의와 죄는 눈 감고 하나님이 나를 고난 가운데 빠트렸다고 말한다. 나의 처지를 긍휼이 여기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환경 가운데 넣고 나를 단련시켰다고 말한다.
이는 하나님을 허탄한 분으로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그런 분이 아니다. 우리가 불의하고 죄 가운데 빠졌을 때 우리를 징계하고 그 값을 반드시 치르게 하시는 공의로운 분이시다.
나중 중국 형제들의 간증을 조심스럽게 들었다. 거짓이 없었다. 자기를 꾸미거나 허물을 덮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의 허물과 잘못을 털어놓았다. 깨끗케 하시는 하나님의 징계를 찬양하였다. 죄는 용서했지만 죄로 인한 결과에 대한 후과를 반드시 갚게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공의로움을 찬양하는 간증이었다. 나의 간증과는 근본이 달랐다. 하나님이 나타나고 하나님이 드러났다.
나는 높은 지위를 얻고자 하여 남을 시기하고 노력하지 않고 남의 덕에 출세하려는 비겁한 자였다. 자격도 없는 사람이 감히 올라가지도 못할 나무에 오르려 했다. 나라의 장래를 망치는 일일 수 있다. 경쟁자를 질투하고 허실을 탐문하는 더러운 자였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부끄러운 자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나를 그대로 둘 수 없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셨다. 하나님은 나를 옥에 가두시고 나의 잘못을 철저히 밝혀내셨다. 내가 국가의 재물을 얼마나 잘못 사용했으며 사사롭게 허비했는지 알게 해 주셨다.
나의 모든 것을 빼앗으시고 내쫓으셨다. 나는 갈 곳이 없었다. 하나님이 두려웠다. 뒤늦게 하나님을 불렀지만 응답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멀리 가셨다. 나를 버리신 것 같았다. 그래도 앉아서 죽을 수는 없었다. 체면 때문에 한국 땅에서 일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니 근본적으로 능력이 없었다.
나는 중국으로 피하여 기회를 엿보기로 했다. 그것도 육신적인 생각이었는지 모른다. 앞으로 세계는 중국 시대이기 때문에 중국은 기회를 줄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외로웠다. 나를 도와주는 이도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 나이가 든 내가 마땅히 들어갈 곳도 없었다.
너무 오랫동안 잊어버린 주님이 생각났다. 주님을 불렀다. 사망의 깊은 골짜기까지 빠트려진 바로 그곳에서 주님은 나를 붙들어 주셨다. 주님은 결코 나를 버리시지 않았다. 이렇게 나의 간증을 바꾸었다. 가슴이 시원하게 내렸다.
형제님들은 그런 나를 위하여 실로 놀라운 사랑을 베풀어 주셨다. 성경대로 나를 위해 교회의 이름으로 주임형제들을 청하여 중보기도를 해 주셨다. 주님은 나의 죄는 깨끗케 해주셨지만 나의 죄 값은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 값을 온전히 다 치르기 전에는 결코 나의 고통의 궁지에서 나올 수 없다는 말씀이셨다.
지금 고통을 받는 것도 죄 값을 치르는 것이란다. 죄 값을 온전히 해결하기 전에는 결단코 그곳에서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나의 죄를 하나님과 형제들에게 직고했다. 남김없이 나의 불의와 죄들을 꺼내었다. 그리고 간절히 하나님께 나의 잘못을 빌었다.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성경을 예비하셨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노들를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5:13-16)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산 다윗도 그가 범죄 함으로 오는 죄 값을 반드시 치르게 했다. 하나님은 다윗의 죄를 깨끗하게 해 주셨지만 죄로 인한 값은 반드시 자신이 담당하게 하셨다. 하나님의 공의로움이시다. 다윗의 범죄로 얼마나 많은 죄 값을 치르게 했는지 성경은 말하고 있었다.
나라가 나누이고 그의 자식들이 서로를 죽였으며 아버지를 대항해 반란을 일으켰다. 백주에 그의 사랑하는 딸이 강간을 당하는 고통을 겪게 하였다. 하나님은 그 죄 값을 철저히 치르게 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 또한 범죄 하였다. 그러나 의인 아브람함의 중보 기도로 저희가 구원을 입었다. 마귀의 소굴 소돔에 빠져있던 롯과 그의 가족을 멸망으로부터 구출해 내셨다. 우리 가운데 죄지은 자를 위하여, 병든 자를 위하여 장로를 청하여 중보 기도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성경에는 생활안에서 죄의 문제를 실제적으로 해결하며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우리가 죄를 범함으로서 오는 고난을 형제들의 중보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의인의 기도가 얼마나 역사하는 힘이 강한지. 우리가 지은 죄를 깨끗케 해 주셨을 뿐 아니라 그로 인한 죄의 값까지 해결하게 해 주신 주님을 찬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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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애굽의 것을 찾아 헤매는 저의 모습을 봅니다.ㅜ.ㅜ
주여 용서하소서..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부활신앙을 갖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