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뽑기에 대하여

2014.01.03 15:07

이병헌 조회 수:1506

제 패친 중에 시인이시며, 교수이신 김응교 선생님께서 쓰신 글이 있어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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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예배 말씀뽑기 하지 않으면 합니다】

예전에 쓴 적 있지만, 아직도 행해지고 있어 올립니다. 귀국해 보니 말씀 제비뽑기가 한국 교회에 널리 퍼진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성경에서 제비뽑기는 책임자를 선발하기 위해서 행해졌던 방법이지, 신년운세를 논하는 듯한 행위는 아니었습니다. http://bit.ly/19E8wui 제 페친 중에 목사님들이 많으시고, 제 친구나 가족 중에도 목사님들 계십니다. 너그럽게 읽어주시...면 합니다. 자의적인 해석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새해 첫시간부터 이런 이벤트에 참여하면 얼마나 황당하고 고통스러운지 표현하고 싶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예전에 썼던 글 요약합니다.

1.
일본에서 신년 0시에 절에 가면, 부적을 줍니다. 그 종이를 문지방에 붙여 놓는 일본인들도 적지 않습니다. 신사에 가서 100원 내면 운세가 적힌 종이를 줍니다. 오미쿠지 [おみくじ] 라고 하지요. 좋지 않은 내용이 나오면 나무에 묶고 나오면 그 나무를 신사에서 일하는 미코(巫女, 우리말로 무당)들이 태워 액운을 없앱니다. 저 오미쿠지를 온 방에 붙여 놓고 사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한국 교회에서 유행하고 있는 말씀뽑기가 일본 불교나 신사에서 유래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그저 타종교의 예를 들어봤습니다.

일본 불교나 신사의 예를 왜 들었냐고 하실 수도 있겠어요. 초신자들에게 말씀 뽑기라도 해서 말씀을 전하고 싶은 목회자들도 뜻도 있겠으나, 좀 다른 방식을 생각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말씀은 피눈물 나는 체험 속에서 한 말씀 체험했을 때, 핏물처럼 눈물처럼 얻어지는 것이 평생 잊지 못할 귀한 말씀일 겁니다. 기형도 시인은 <우리동네 목사님>이란 시에서 "성경에 밑줄 치지 말고 생활에 그어야 한다"고 말했지요.

"성경 말씀이란 활자 자체에는 의미가 없어요. 그런데 그 활자들이 현장을 만날 때 살아나지요"라고 말씀해주신 방인성 목사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삶과 스파크를 일으키며 살아난 말씀이 진정 나에게 주어진 말씀일 겁니다.

목사님들께서 어떡하든 말씀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시겠으나, 진정 그러한 마음이라면 한 명 한 명 그 아픔과 희망을 묵상하며 개별적으로 전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라 한 명 한 명에 대한 깊은 성찰이 없이 복만 전해주는 기복적 주술적 효과가 개입될 여지가 있다면 이런 형식은 과감이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 새해 첫날부터 고통스러워 하는 신도들 한둘이 아닙니다.

예배는 삶이며, 예배는 주일의 형식이기도 합니다. 주일날 연습한 예배, 주기도문과 축도가 끝나면 진짜 예배를 드리죠. 그런데 이상한 예배를 드리면 삶의 예배까지 일주일 내내, 1년 내내 언찮고 고통스럽습니다.


2.
제가 이런 글 올리기 전에 이미 김요한 목사님께서 2008년에 이런 행위에 대해 지적했었습니다. http://bit.ly/19E9UNm 김요한 목사님 말씀 중에 중요한 부분은 아래 부분입니다.

“성경을 바르게 읽는 첫 걸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문맥 안에서 읽는 것임을 하시라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 문맥이 모여 성경 각 권을 이루고, 또 성경 각 권이 모여 성경 전체를 이룬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사실상 성경은 결국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 즉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에 관한 위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에 관한 단일한 이야기임을 전제하고 성경 각 권을, 그리고 부분 부분을 읽어야 한다.

말씀을 문맥과 상관없이 해체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욕되게 하는 일들이 우리 주위에는 비일비재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상당수의 교회들이 송구영신 예배 때 시행하는 소위 [말씀 뽑기] 행사이다. 이는 성경에서 소위 가장 ‘은혜로운’ 구절들만 뽑아서 말씀카드를 만들고 (예배 도중) 교인들이 일렬로 줄을 서서 뽑는 것이다. 그리고 본인이 뽑은 말씀을 하나님이 올해 자신에게 주신 말씀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직하게 자문해보자. 그렇게 해서 선택한 말씀이 정말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시는 말씀인가? 혹시 그런 행사를 통해 주시는 말씀은 하나님이 아니라 그 교회 담임목사가 (교인관리를 위해) 주는 말씀은 아닌가? 아니 좀 더 신랄하게 표현하자면 말씀카드 제작 회사에서 (장삿속으로) 주는 말씀은 아닌가? 혹시 이것은 기독교식 신종 [신년운세]가 아닌가?

..... 성경에는 축복과 위로와 소망 뿐 아니라 경고와 책망과 심판의 말씀도 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고자 한다면 반드시 그 모든 구절들을 동등하게 심각하게 여기고, 그 안에 담겨진 영적 도리대로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복을 받고 싶다면, 부지런히 성경 전체를 읽을 것이요 그리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면 된다. 하나님은 2008년에도 우리에게 성경 66권 모두를 ‘올해의 말씀’으로 주셨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

3.
다른 분들의 지적도 있습니다. 클릭해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http://bit.ly/19E8UJa
위의 글에서는 첫째, 성경 구절을 좋은 구절만 뽑아 전하는 행위에 대한 비판입니다. 둘째는 모든 성경구절을 ‘축복’으로만 해석하는 '아전인수'의 해석이 일어납니다. 심판과 지적에 대한 구절은 처음부터 제외됩니다. 셋째, 그래서 성구 뽑기는 교인들을 편협된 신앙으로 빠뜨린다는 지적입니다. 넷째, 성경을 '신년 운세 점치기'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입니다. 차라리 스포츠 신문 일일운세란을 보는 게 좋습니다.

“성경을 아무 거리낌 없이 점쟁이가 점을 치듯 몇 구절 뽑아서 그것만 붙들고 1년을 살라고 던져주는 무책임한 일을 중단해야 합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일부 교회는 그 '성경 뽑기' 통 앞에 간혹 '헌금' 통을 놔둔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헌금 봉투에는 어김없이 '새해 소원 기도 제목'이라는 내용을 기록하게 합니다. 도대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르는 이 같은 관행에 대해 심각하게 문제를 제기해야 할 때가 됐다고 판단합니다.”

또한 부적 모으듯이 말씀뽑기를 모으는 어르신들도 있어, 신수 뽑는 것 같은 마음 자세를 안타까워 하는 글도 있습니다. http://bit.ly/19Ebxe6

4.
부족한 생각들 정리하자면,

1) 성경에는 책임자 선발하려는 제비뽑기 외에 주술적인 말씀뽑기 없습니다. 한 해를 지내며 말씀뽑기 하는 성경적 유래는 없습니다.

2) 말씀뽑기는 일본 불교나 신사, 대만 불교 혹은 원시종교에 있는 행태입니다. 신사에서 일반화 되어 있는 이런 말씀(운세)뽑기를 일본인 교회에서 본 적은 없습니다.

3) 성경은 부분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맥락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한 구절의 의미가 전체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일 수 있습니다.

4) 말씀 뽑기는 축복만 강조하는 기복신앙을 주입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입 벌려 우유병 넣어주기만을 바라며 성장 못하는 유아신앙인을 양산할 수 있습니다.

5) 목회자가 진정 성도에게 말씀을 주고 싶다면, 그 사람의 삶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기도한 뒤, 그것이 책망이 되더라도 적절한 말씀을 주어야 합니다. 머리털 한올이라도 세신다고 했는데, 10만명이든 이런식으로 말씀을 흩뿌리는 것이 목회인지요?

6) 새해를 위해 주시는 말씀은 한 구절이 아니라, 성경말씀 '전체'입니다. 제 페친이신 김석희 님께서 이 글을 보시고 이런 댓글을 달아주셨습니다. ㅡ "우리 가족도 말씀카드를 뽑씁니다!!! 두구두구두구두구두!!! ....... 2014년 우리 가족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창세기 1장 1절~요한계시록 22장 21절> 와우!!!
죽을때까지 우리 가족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당♥"

7) 뭔가 해야 한다면 성경읽기표를 주든지 세족식을 하든지, 차라리 조를 짜서 노숙인이나 독거노인을 찾는 실제적인 일을 하면 합니다. 그것이 진짜 축복받는 길이죠 ㅡ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고흐가 자기 아버지께 남긴 그림을 생각해 봅니다. 아버지의 목회가 얼마나 이원론적이었고, 그래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그 아픔이 저 그림이 담겨 있습니다. 성경 옆에 에밀 졸라 소설책이 놓여 있지요. 저 그림에는 세상 속의 소금, 어둠 속에 빛의 역할이 성경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에밀 졸라 소설 같은 세속과 만날 때 의미가 있다는 것을 고흐는 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난 뒤에 저 그림으로 표현합니다. 성경 말씀은 그저 아무에게나 던져 주면 복 된 것이 아닙니다. (졸고 <세상 속의 성경, 빈자의 감자 성만찬> http://j.mp/VarbIZ )

예수는 정치적이 아니라면서 예배시간에 정치인들 소개하는 이벤트, 교회는 세상과 다르다 하면서 백화점식으로 세일즈맨처럼 "정복하라" 외치며 가장 자본주의적인 세일즈방식 교육하는 이벤트, 예배는 신성하다 하면서 샤머니즘적 주술을 이용하는 이벤트, 예배인지요?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족에게 이런 일을 명확히 거부하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분이 그러지 않으시지만 혹시, 혹시 말입니다. 말씀뽑기를 하면서 권위적으로 안수를 강요하면서 목사가 자신도 모르게 샤먼의 지위를 즐기려는 욕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멈춰야 합니다. 그 순간 그것은 예배가 아니라, 주술행위입니다. 이런 주술행위에 멍하니 앉아 있으면 무당목사에 무당교인, 예배당이 골빈당 됩니다.

 

말씀뽑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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